17일 한 통의 이메일이 눈에 띄었다. ‘명절 선물 때 과대 포장이 급증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2014년 3년간 추석과 설 명절 때 선물 과대 포장으로 단속된 건수는 모두 230건이다. 이로 인해 부과된 과태료만 6억6천여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사실 기자는 포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겉포장이 화려하게 돼 있는 물건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벗겨질 포장지에 왜 저렇게 신경을 쓰나 싶기도 하다. 부실한 내용물을 감추기 위해 과대 포장 하는 경우도 있으니 물건을 사고 나서 불쾌했던 경험도 있다. 흡사 믿었던 친구한테 뒤통수 맞은 기분이다.
해당 보도자료를 보면서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인물이 있다. 이완구 국무총리다. 그는 오랜 행정 경험과 정치 경륜을 지닌 인사다. 여당 원내대표를 지내면서 야당과의 협상을 잘 이끌어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약칭 논란이 있었을 때 야당 편에 서서 두둔하는 등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야당도 처음엔 환영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치면서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언론과의 오찬자리에서 가진 대화는 그를 위기로 몰아넣은 결정타가 됐다. 이완구 총리의 언론 대화가 부적절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 총리가 권력의 한 중심에 서 있다는 점에서 ‘언론 외압’ 의혹을 받기에도 충분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허풍’을 떨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자신의 꿈이었던 총리 후보로 내정되고,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기분이 좋아져 무의식 중에 자신을 포장했다는 주장이다. 이 총리가 모 방송사에 자신에게 껄끄러운 패널을 빼라고 했다지만 실제 그런 요구를 받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누군가 요구를 받았다면 요즘 같은 세상에 폭로전이 벌어졌을 법도 한데 조용하게 지나간 것은 요구 받은 당사자가 없기 때문이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많은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알게 모르게 자신을 포장하는 경향이 있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듣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받는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가끔 나이 드신 분들의 무용담을 들어줘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재밌을 때도 있다. 그러다 계속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 상황이 되면 듣기가 점점 괴로워진다.
물론 적당한 포장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사석에서 친구들끼리가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총리는 이날 언론 외압 의혹 논란에 대해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아서 송구스럽고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다. 언론자유는 어떤 기본권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라며 사과했다.
이완구 총리의 인준안은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 그 만큼 앞으로는 행동 하나, 말 한 마디를 더욱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의 화려한 말과 경력은 포장지에 불과하다. 포장지는 금방 벗겨진다. 어렵게 총리가 된 만큼 국민들에게 솔직한 말과 행동으로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