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표지를 잘못 봤나 싶었다. “귀사에서 제안하신 일자리를 거절합니다. 이력서도 동봉하지 않겠습니다.” 더 가관인 건 책 제목인 ‘입사거부서’. 입사지원서도 아닌 거부서라니.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줄리앙 프레비유의 개인전 ‘핀치-투-줌’ 현장을 갔다가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책은 2016년 번역, 출간됐으니 개인적으로는 조금 늦게 안셈이지만, 이미 미술계뿐 아니라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책이었다.
줄리앙 프레비유는 기술의 사용, 지식 산업, 경제의 작동 방식 등 현실의 광범위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진행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작업을 전개해 왔다. 입사거부서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약 7년 동안 1000여 곳의 채용공고에 입사거부서를 보냈다. 말 그대로 “난 당신의 회사에 지원하지 않겠다”는 입사거부서다. 채용공고를 읽어보고 내용을 지적하거나, 딱딱한 어투를 지적하거나 하는 등 입사를 거부하는 이유를 적어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어떤 회사엔 ‘법적 최저임금의 65%를 약속한다’는 채용공고에 “성공적인 삶과 박한 임금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성립돼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고, “근무 시간과 급여의 변수가 ‘미확정’으로 남아 있는 관계로, 귀사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며 비꼬기도 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너무 바빠서 당신의 회사를 거절할 수밖에 없다”거나 아예 의미가 없는 글자들을 나열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회사의 반응이다. 형식적인 불합격 통보가 돌아올 때가 많았고, 작가의 입사거부서에 “예의를 갖춰달라”며 불쾌함을 표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작가의 작업에 흥미를 보이며 “비판적 시선을 나누는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회사들도 있었다. 회사뿐 아니라 다른 곳들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한 정신과 의사는 “환자들과 이런 방식으로 워크숍을 해보고 싶다”고 했고 경제 분야에서도 관심을 기울였다. 작가는 “농담처럼 시작됐던 입사거부서 작업이 7년 동안 지속되고 책으로까지 출간되며 사회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로 말했다.
작가는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까? 작가는 “취업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2000년 미술대학 졸업반 학생이었을 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 난 퍼포먼스 기반의 작업을 했는데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못할 상황에 처했었다. 서점에는 노동 관련 책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보고 취직이 어려우니 차라리 내가 먼저 거부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입사지원서를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책들은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입사거부서라는 발상의 전환이 오히려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또 작가는 입사거부서를 가볍게만 다루지 않았다. 각 회사의 채용공고 자료를 모두 찾아보고 분석한 뒤 채용 공고의 언어 속 드러난 현실과의 부조리를 꼬집어 드러냈다. 취업이 간절한 상황에서 함부로 입 밖에 꺼내지 못할 이야기들을 작가는 거침없이 꺼냈고 이점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작가의 입사거부서 못지않게 흥미로운 아이템이 국내에도 최근 있었다. 스파오가 해리포터와 진행한 컬래버레이션에서 유독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품절 이후 현재까지 구하기 힘든 이른바 ‘도비 맨투맨’이다. 해리포터 이야기 캐릭터 중 하나인 도비의 대표 대사를 활용한 것으로 흰색 맨투맨에 “Dobby is Free”(도비는 자유예요)라고 적혔다.
이 정도라면 평범한 컬래버레이션에 그쳤겠지만, 스파오는 이 맨투맨의 홍보 문구로 “도비는 자유로운 집요정이에요! 퇴사, 이직 선물로 딱!”이라고 적었다. 취업난 못지않게 현대인이 힘들어하는 게 사회생활이다. 이 지친 현대인의 심정을 솔직하게 꼽아낸 도비 맨투맨은 품절 대란을 일으켰고,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로도 남았다.
현대인의 대부분은 ‘을’로 살아간다. 취업을 위해 회사에 몸 바쳐 충성하겠다는 취지의 입사지원서를 쓰고, 취업을 한 뒤엔 회사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치를 보고, 을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자신의 제대로 된 권리를 주장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갑질 관련 뉴스는 이런 씁쓸한 상황을 대변한다.
이 가운데 줄리앙 프레비유의 입사보고서와 도비 맨투맨은 “나는 당신의 회사를 거부한다” “나는 당신의 회사에서 나간다”고 당당히 언급했다. 사람들의 마음에 던진 작은 위로와 통쾌함은 “고개를 떳떳하게 들고 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유독 이들에 열광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