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에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났다. 커피숍 매장 안에서 커피를 마시면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할 수 없다.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 종이컵을 주면 벌금을 내도록 법이 개정됐다. 모 커피 전문점은 종이 빨대, 빨대가 필요 없는 컵 뚜껑 등으로 일회용 쓰레기를 줄이는 전 세계적인 움직임에서 앞장서고 있다. 이 회사는 재활용 가능한 일회용컵 디자인 공모전에 상금으로 1000만 달러를 걸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부도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 감축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원인이 잘못된 디자인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디자이너들은 외부의 이런 질타에 기꺼이 수긍하며 ‘착한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이런 흐름에 날선 의문을 던진다. 그게 정말 디자인의 잘못일까? 디자인만으로 우리 앞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걸까? 왜 디자인은 꼭 도덕적이어야 할까?
저자는 디자인과 도덕의 관계가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갑작스레 부각된 것이 아니라 아주 예전부터 그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있었음을 논증한다. 그리고 그런 오래된 요구에 부응한 현대 디자인 활동으로 에코 디자인과 공정무역, 소외 계층을 위한 디자인 등을 거론한다. 처음엔 선의로 시작된 일들이 정말로 끝까지 선한 영향력만을 미쳤는지, 우리가 고려하지 못했던 부작용은 없었는지, 그것들이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인지, 아니면 한낱 미봉책에 불과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디자이너에게 도덕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오늘의 복잡한 문제를 간편하게 해소하려는 방편일지도 모른다고도 꼬집는다.
김상규 지음 / 1만 1000원 / 안그라픽스 펴냄 / 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