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맥주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국산맥주가 신제품 출시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일부 외국맥주는 국내공장에서 생산된다는 점. 국내 최대 주류사인 오비(OB)맥주는 시중 유통 중인 20여 종의 외국브랜드 중 두 종류를 국내에서 만들고 있다. ‘수입맥주가 늘면 국산맥주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얘기가 과연 맞을까. (CNB=김주경 기자)
‘국내산 외국맥주’는 ‘국산맥주’
‘수입이 국산 침범’ 논리 틀려
알면 알수록 복잡한 맥주시장
‘치맥 열풍’에 이어 ‘혼술족’ 증가로 맥주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국산맥주의 시장점유율은 2014년 93.9%에서 2017년 90% 수준으로 떨어진 반면, 동기간 수입맥주 판매량은 꾸준히 늘어 7.8%에서 현재 10%대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맥주 수입액도 점차 늘었다. 2014년 1억 달러 돌파 이후, 2016년 1억8158만 달러,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2억1686만 달러를 기록하는 등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 수치만 놓고 본다면, 수입맥주의 증가로 인해 국산맥주의 입지가 위축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오해가 숨어 있다. 수입맥주는 외국에서, 국산맥주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수입맥주 중 일부는 국내에서 제조되고 있다. 국내에서 제조되는 수입맥주는 정확히 말하면 ‘국산맥주’다. ‘국산(國産)’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나라에서 생산한 물건’이다. 따라서 ‘국산 외국맥주’는 엄밀히 말하면 ‘수입(輸入) 맥주’가 아니다.
오비맥주는 외국기업?
대표적인 예가 오비맥주다. 오비맥주는 주요 브랜드인 ‘카스’, ‘프리미엄 오비’ 외에도 호가든, 버드와이저 등 일부 외국맥주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호가든과 버드와이저의 대부분은 오비맥주 광주공장에서 제조해 보급하고 있다.
오비가 외국맥주를 국내에서 생산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과거 두산그룹 계열사였던 오비맥주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글로벌 주류사인 AB인베브에게 지분 50%와 경영권을 매각했다. 이후 두산그룹이 지분을 추가로 매각하면서 오비맥주는 AB인베브의 소유가 된다. 이후 AB인베브는 몇 년간 사모펀드에 오비 지분을 넘겼다가 2014년 되찾아 왔다.
이후부터 AB인베브는 공격적인 시장 확대 전략을 펼쳤다. 영국 에일맥주 ‘바스’를 선보인 이후 독일 밀맥주 ‘프란치스카너’, ‘호가든 로제’, ‘그랑 크루’, 중국 ‘하얼빈’ 등 약 20여 종의 수입 맥주를 국내에 보급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오비맥주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외국맥주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수입맥주가 늘면 국산맥주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논리는 허점이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호가든과 버드와이저의 점유율이 늘어난다는 것은 국산맥주의 점유율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수입맥주 점유율’ 숨은 진실
그렇다면 호가든과 버드와이저가 국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일단 전체적인 시장 판도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오비맥주의 국내 맥주시장 시장점유율은 약 50~60%다. 하이트진로는 30% 안팎이며, 롯데주류는 5% 가량이다. 수입맥주는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호가든과 버드와이저는 ‘수입맥주 10%’에 포함될까?
이에 대한 해석은 맥주사들 마다 차이가 있다. 오비맥주는 ‘수입맥주 점유율’이 아닌 자사의 시장 점유율에 호가든과 버드와이저 뿐 아니라 오비가 수입하고 있는 20여종의 브랜드를 포함시키고 있다. 1위 업체로서의 비중을 더 커보이게 하고자 함이다.
하지만 나머지 주류사들은 오비의 수입맥주들을 떼어내 ‘전체 외국 맥주군’에 넣고 있다. 오비맥주의 시장점유율을 조금이라도 적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러다보니 ‘국내산 외국맥주’를 제외한 ‘순수 수입맥주’의 정확한 비중은 밝혀진 바가 없다. 오비맥주 측은 영업기밀 등을 이유로 굳이 이를 분류해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주류 3사는 시장점유율을 각자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더구나 오비맥주가 최근 ‘호가든’ 캔맥주에 대해서는 병행수입으로 변경하면서 통계가 더 복잡해졌다. 오비맥주는 지난 7월부터 기존 호가든 병맥주와 캔맥주의 국내생산은 유지하되, 캔맥주는 소비자 취향을 고려해 수입 물량을 늘리고 있다.
이처럼 맥주시장은 ‘수입맥주’ ‘국산맥주’ ‘국내산 외국맥주’ ‘국산·수입 병행 맥주’ 등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띄고 있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산 외국맥주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수입맥주가 늘면 국산맥주의 입지가 줄어든다’고 말할 수는 없는 구조”라며 “여러 형태(국산, 수입, 병행수입)의 외국맥주가 혼재된 상황에서 각각의 시장점유율을 따지는 것도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CNB에 “오비맥주 내 수입 맥주 비율은 5% 정도로 크지 않아, 여전히 시장 확대 전략의 핵심은 ‘카스’에 두고 있다”며 “인기를 끌고 있는 호가든이나 버드와이저와 같은 자체 생산 외국맥주는 사실상 국산맥주로 분류돼 국내산 프리미엄 브랜드에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NB=김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