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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현장] ‘강남역 살인’은 정말 ‘여성 혐오 범죄’일까

“성대결에 사태 본질 묻혀”…국회 ‘10인 10색’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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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강소영기자 |  2016.05.30 16:34:07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에 대해 '여성혐오'라는 의견과 '정신질환자의 범행'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가운데 지난 26일 국회에서 이 사건의 대책을 모색하는 자리가 열렸다. (사진=강소영 기자)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뜨겁다. 묻지마 살인인지, 여성에 대한 혐오로 발생한 사건인지에 대한 정의조차도 내리지 못한 채 여러 주장이 난무하면서 성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공은 국회로까지 넘어갔다. 지난 26일 국회 의원회관 지하 1층에서는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세미나(토론회)가 열렸다. 백여 명의 각계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CNB=강소영 기자)

‘여성 프레임’ 넘어야 사건 본질 보여
‘혐오’인지 ‘묻지마’인지 정의 못 내려
사회안전망 구축 및 공동 연대 ‘시급’

생각지 못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순간 당신이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황망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 순간에 목숨을 잃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에 대한 범죄’ 나아가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들여다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 참여한 남인순 국회의원과 권미혁‧정춘숙‧표창원 국회의원,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이택광 경희대 교수, 허민숙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노성훈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 등은 사건의 본질이 ‘여성혐오’라고 지목했다.

권미혁 당선자는 “‘묻지마 살인’같은 중립적 용어보다는 ‘혐오’라고 정확히 규정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묻지마 범죄’와 ‘여성혐오’라는 규정 사이에는 대책에 많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허민숙 교수도 “여성혐오는 함부로 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침묵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23세의 그 삶이 송두리째 일순간 사라지게 된 데에는 정신질환자와 공용화장실, 하필 그곳에 가게 된 그녀만이 존재했었다고 생각지 않는다”면서 ‘여성 문제’로 접근해야 함을 시사했다.

송란희 사무처장은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여성안심택배, 여성안심지킴이집 등 여성대상범죄예방 대책들은 ‘여성이 조심하면 범죄를 피할 수 있다’ 등의 여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에 강의하며 묻지마 사건을 접해왔던 노성훈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지불해야 하는 ‘위험비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경찰의 발표처럼 피해망상에서 비롯되었든 아니면 일각에서 주장하듯 여성혐오로 인한 것이든, 이는 명백히 여성을 범행대상으로 특정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즉,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단순히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과 여성 단체들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번 토론회는 전문가들 외에도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참석 여성들은 대체로 이번 사건을 '여성 혐오'라는 시각에서 해석했다. (사진=강소영 기자)

토론회에 참가한 20~30대 여성들도 목소리는 한결 같았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떨리고, 목소리의 떨림을 잡기 위해 애써 노력하면서도 눈빛에서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20대 성진아 씨는 “동성애 혐오를 다룬 책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성소수자 혐오 범죄로 희생당한 열네 명의 이야기)를 보면 대체로 혐오 범죄들이 특정한 집단들에 대한 무차별적 가해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또 30대 이윤주 씨는 “제 주변에 보이는 남성들은 여성혐오로 인정하지 않는다. 경찰청이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발표했다며 제가 예민하다고 한다. 강남역에서 추모를 하는 동안 누군가 몰카를 찍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면 추모하는 사람들은 뚱뚱하고 못생기고 마치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인 듯이 몰아간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패널들은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는 다른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이 여성차별적인 것은 아니지만 여성을 열등하게 느끼고 여성의 가치를 무시한 폭력이라면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눈에 띄는 점은 이 자리에서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나온 남성의 발언이었다. 

20대 남성 이형준씨는 “저의 친구 두 명과 이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한 명은 남자인데 이 사건에 대해 '이런 주제를 놓고 말해본 적도 없고, 인터넷에서의 논쟁도 납득할 수 없었다'고 얘길하더라”라고 밝혔다. 이어 “또 한 명은 여자로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는 사람인데 '이 사건 이후 인터넷을 보며 자신이 중학생 때 취객에게 치근덕거림을 당한 것, 스물한 살 때 남자친구에게 폭력을 당한 상황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여성 차별이 공론화 된 것이야 말로 큰 성과라고 말하고 싶다. 남성 혐오 문제로 몰고 가는 이들이 있더라도 더 시퍼렇게 말해야 한다'고 강조하다러"고 전했다.

여성의 입장을 전하는 남성의 단호한 말투에 세미나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그러나 곧 한 어머니의 간절함에 장내는 금세 숙연해졌다.

지난 달 19일,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했다는 이유로 가락동에서 대낮에 칼에 찔려 목숨을 잃어야 했던 피해자의 어머니는 “피고인이 집 앞 구치소에 있다. 혹시라도 탈출할까 잠을 자지 못한다. 자식을 잃은 어미로서 이 나라의 법이 너무 약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게 탄원서 받으러 여기저기 다니는 것뿐이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전문가들은 '여성 범죄'와 '여성 혐오'는 구분해야 한다면서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연대를 촉구했다. (사진=강소영 기자)

‘공용화장실 전수조사’는 일회성 조치일 뿐

이번 사건으로 추진되고 있는 ‘남여공용화장실 전수조사’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강화’ 등은 일시적인 결과를 가져올 뿐, 사회적으로 뿌리 깊은 ‘여성혐오’에 의한 범죄를 막기 위한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춘숙 의원은 “여성폭력과 혐오에 대한 교육을 정규 교과과정으로 넣어야한다. 지속적으로 해야만 인식이 변할 수 있다”며 교육에서부터 ‘혐오’에 대한 교육이 선행돼야 함을 피력했다.

이택광 교수는 더 나아가 “‘집에 일찍 들어가지 뭐했냐’는 인식, 그게 바로 여성에 대한 프레임이다. 그걸 극복하지 못하면 이런 사건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극복을 위해서는 소수약자의 연대를 위한 비타협성이 필요하다”며 여성을 위한 운동, 나아가 동성결혼, 이주민 문제 등 소수자를 위한 연대를 펼쳐나가야 한다고 불을 지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점이 자칫 ‘성 대결’로 비춰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범죄’로 인식해야 하는데 ‘여성 운동’으로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

표창원 위원은 인사말에서 “인간이 야만과 다른 것은 사람들이 불안 없이 마음껏 생각을 표현, 이동, 행동하는 사회 구축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이다. 강남역 살인을 모든 걸 한순간에 무너뜨린 상징적 사건이지만 성대결처럼 보이는 다툼은 결코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다. 사회적 역량을 모아 합의를 이끌어내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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