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진도해역에서 침몰한 지 2년.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선체 조사 전 특조위 임기가 끝나는 등 반절에 그친다는 비난이 인다. 그러나 정치 판도를 바꾼 이번 선거로 특별법 개정을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진은 2014년 4월 16일 사고해역에서 침몰 중인 세월호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2주기를 맞았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속절없이 목숨을 잃은 304명 중 9명은 아직도 세월호의 어둠에 갇혀있다.
팽목항의 울부짖음은 현재 광화문 천막으로 이어진다. 못 다 핀 채 지고만 아들‧딸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찬 바닥에서 부모들은 아직 외치고 있다. 그들의 바람은 침몰원인, 구조방기 등에 대한 조사를 해달라는 것.
세월호 가족들은 2014년 5월부터 특별법(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국가위원회 설치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외쳤다. 특별법에는 ‘진상규명 전 과정에 피해자 가족들의 참여가 보장되고, 충분한 조사기간과 관련한 모든 공무원, 국회, 언론 및 관련 민간인을 조사대상에 포함’하는 안 등이 담겨있다. 그 과정에 피해자 지원, 치유 및 추념사업도 포함된다.
한때 법안에 있다고 알려졌던 ‘공무원 시험 가산점’, ‘대학 가산점’ 등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안에 대해 유족들은 “근거 없는 마타도어”라고 밝혔다. 이들이 이토록 특별법을 원하는 이유는 이런 혜택 목적이 아니라 ‘진상 규명’이다. 최소한 가족의 죽음에 대해 납득할만한 이유를 달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로 시작됐다. 김기춘 비서실장 증인채택을 두고 여야가 한 달을 힘겨루기 하는 등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또한 3개월만 시한부로 진행되는 국정조사로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할 수 없다고 유가족들은 판단했고 특별법 제정에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국민들의 서명운동까지 진행하며 제정됐던 특별법은 진상조사위원회의 권한과 관련해 여야가 이견을 보이면서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었다. 보상과 지원이 아닌 수사권과 기소권에 여당이 화들짝 놀라며 특별법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다. 그러다 2015년 1월 특별법이 시행됐고, 시행령은 그 해 5월부터 시행됐다.
어렵게 시작된 특별법 시행 후에도 많은 고초가 있었다고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말한다. 예산부터 인력까지 무엇 하나 쉽게 진행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인양 뒤 모든 처리 과정을 공개하고, 특조위가 요청하면 선체 조사도 가능하다"고 말해 큰 희망이 됐던 선체 인양도 7월로 미뤄졌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은 오는 6월까지다. 임기가 끝나버리면 해양수산부의 약속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4.16 가족협의회’는 지난 2월 활동기한 연장과, 활동 방해 행위를 특조위가 직접 수사할 수 있는 특별사법경찰권 등을 골자로 하는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표했다.
지난 13일 총선을 기점으로 유가족의 바람과 함께 정치권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서울 은평갑)는 "‘세월호 변호사’로서 국회에 들어가면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여러 가지로 제약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을 개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활동시한 문제나 선체인양과 관련된 권한을 명확히 해주고 예산·인력 지원 같은 것들도 제대로 해줘서 세월호 특조위가 진상규명 활동을 하기 위한 기반을 만들어줘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세월호특조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표창원(용인정) 당선자, 세월호 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바 있는 유성엽 당선자(전북 정읍고창) 등이 20대 국회로 들어와 세월호 관련 법안 처리가 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캐스팅보트로서 열쇠를 쥐게 된 국민의당도 반색하며 특별법 개정에 박차를 가할 것을 시사했다. 하늘이 무너진 유가족들에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저서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에서 “살아남은 자의 소명은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별법에 대한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도 우리의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