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릴리언트 메모리즈’ 전시 전경. (사진=현대차)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 박재영 소장은 크라이슬러 카라반을 여태 몰고 다녔다. 피아트-크라이슬러도 아닌 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의 99년형 카라반이었다. 아버지가 물려주셨다는데, 17년째 별 탈 없이 잘 타고 있단다.
이화여대 건축공학과 연구교수인 박 소장은 아버지가 워낙 차를 좋아하셔서 덩달아 관심을 갖게 된 케이스다. 학창 시절 일본 자동차 전문잡지들을 찾아 헌책방을 헤맸고, 일본 말은 못해도 거기 나온 자동차 사진 보는 것이 좋았다 했다.
그에 따르면 자동차의 진가는 최소 10년 10만 킬로를 뛰어봐야 알 수 있다. 그는 그 차의 본래 모습을 아는 데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하다고 했다. 신차를 빨리빨리 소비하는 데 그치는 한국의 자동차 문화가 아쉬운 것도 그 때문이다.
그가 설립을 주도한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는 급변하는 자동차의 미래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논의해보자는 취지에서 이달 초 문을 열었다.
박 소장은 “자동차를 포함해 미래 ‘탈 것’의 변화를 진단하고 그에 걸맞은 기술 트렌드를 전망하기 위해 연구소를 설립했다”고 밝혔고, 당장 4월 21일 국회에서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런데 인터뷰 내내 자동차 미래를 전망하는 학자이기에 앞서 자동차 마니아로서 차에 대한 애정이 먼저 보여 반가웠다. 향후 자동차의 트렌드와 자율주행차의 쟁점에 대해 말하는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지난 세기의 카라반을 타는 모습은 썩 잘 어울렸다.
마침 박 소장을 인터뷰한 그 주에 현대자동차와 서울시립미술관이 함께 꾸린 자동차 전시가 오픈했다.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동행’이란 전시로, 폐차 직전의 자동차들이 전시장에서 작품으로 둔갑해 있었다.
작품의 소재가 된 차들이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중 특히 ‘백 투 더 퓨처’에 나오는 ‘드로이안’ 같이 생긴 자동차가 눈길을 끌었다. 현대 쏘나타3을 해체 후 재조립해서 미래형 자동차로 탈바꿈시킨 작품이었는데, 차에 얽힌 사연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차주는 어머니에게서 이 차를 물려받았다. 부모님의 이혼 후 다시 어머니를 만나기까지 14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머니 혼자 힘으로 버티셨을 모진 세월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차주는 고백했다.
그 어머니가 남기신 차가 1998년식 수동 쏘나타3였다. 어머니는 운전하기 전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좋아하는 올드 팝을 들으면서 즐겁게 운전하셨단다. 차주는 14년 동안 자신을 대신해 어머니 곁을 지킨 이 차를 쉽게 폐차 시키지 못하겠다고 했다.
최근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의 여파가 만만찮았다. 많은 얘기와 전망이 오갔고, 앞으로 더할 것 같다. 앞서 박재용 소장도 구글 자율주행차에 대해 언급하며 우리도 논의를 본격화 할 때라고 지적했다.
단지, 그렇더라도 카라반이나 쏘나타3의 의미와 가치도 함께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에겐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왔다 사라지는 것 같다. 바둑의 낭만을 지키겠다던 이세돌 9단의 말처럼, 자동차의 낭만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보자.
안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