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학교주관교복구매제를 단기 방안으로 내놓고 교육청과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가운데, 방안 중 하나인 ‘교복표준디자인제’가 논란을 낳고 있다. 현재 강원도교육청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표준 교복을 선택하도록 해 학생들의 반응에 눈길이 쏠린다. (사진=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난 2일 발표한 ‘교복가격 안정화 방안’으로 내놓은 ‘교복 표준디자인제’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날 인터넷에서는 ‘70년대 유신’, ‘옛날 교복’, ‘교복값’ 등이 화두로 떠올랐다.
교복표준디자인제는 전국의 국공립 중·고등학교 교복 디자인을 통일하는 것이다. 공정위가 마련한 단기적 방안에는 10~20여개의 표준디자인을 제시해 각 학교에서 적합한 교복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원하는 디자인을 선택한 학교는 공개입찰로 업체를 선정해 교복을 지급 받는다. 공정위는 이후 교복 시장형성이 자리를 잡게되면 중장기 방안으로 학교주관교복구매제를 없애고, 대형마트 등 일반소매점과 온라인을 통해 구매가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목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립학교는 자율에 맡긴다.
이렇게 되면 교복디자인의 수가 한정되는 데다 공개입찰을 통해 교복을 구입하기 때문에 구입단가가 내려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학교별로 디자인과 업체를 선정해왔기 때문에 교복값이 중구난방이었다.
교복값 하락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전국의 교복은 10~20개의 디자인으로 통일된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다양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공정위는 “20여개 정도의 디자인이라면 다양성과 학교 표식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선 상태다.
당사자인 학생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평소에 ‘수능 거부’, ‘두발자유 요구 시위’ 등 튀는 행보를 보였던 ‘아수나로’ 회원들을 만났다. ‘아수나로’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 ‘엑소더스’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이 만든 국가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이 단체는 ‘청소년들 스스로 행동하고 저항하는’ 것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회원들은 대부분 중고등학생들이고 일부는 졸업한 선배들이다. 지난 2011년 수능거부를 한 바 있는 둠코(여, 23)회원과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준영(남, 19)회원을 지난 11일 인터뷰했다. (CNB=강소영 기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청소년에 관련된 문제를 사회적으로 직시하도록 직접 거리로 나서 목소리를 내는 단체다. ‘수능 거부’, ‘학습 시간 단축’ 등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교복표준디자인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들은 “시장논리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행정을 마련하기 전에 교복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아수나로)
- ‘교복 표준디자인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준: 학생의 선택권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교복은 빈부격차가 드러나고 학생 선도가 어렵다는 이유로 국가에서 지정한 것이지 않나. 생활지도란 측면에서 교복과 두발 규제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도 존중을 받으면서 다닐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둠: 표준 디자인제로 교복을 거의 일원화한다는 것은 동물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시장논리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입는 의복으로서의 고민이 필요하다. 두발 규제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 교복과 두발규제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준: 학생들의 모습을 규제가 어떻게 가리는지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겉모습을 ‘미관상’이라는 이유로 자유롭지 못하게 가두면서 교복을 입는 아이의 내면과 가능성을 외면하는 측면이 있다.
둠: 일선 학교에서는 여자 학생에게 머리카락을 귀밑 몇 센티라고 정하고 층을 치면 안된다는 등 세세하게 규제한다.
일례로 지나친 두발규제에 아예 숏컷으로 머리를 자르고 온 여자아이가 있었다. 한 남자교사는 “여자가 머리가 이게 뭐냐. 입학 일주일 남았으니 머리를 붙여와라”고 하더라. 충격이었다. 두발규제의 명분은 표면적으로는 단정함이지만, 실상은 어른들이 보기에 좋은 ‘단정함’을 강요하는 것이다.
얼마 전 논란이 된 박진영과 걸그룹의 교복 광고도 이러한 맥락이다. 실상 현실에서는 교복을 통한 통제를 원하면서도 허리통을 줄여 코르셋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치마를 짧게 해 여학생의 섹시함을 과장한 광고가 배출되고 있다. 학교에서 말하는 ‘미관상’은 이 ‘미관상’이 아닐 텐데 말이다. ‘교복 표준디자인제’는 이러한 교복에 담긴 사회적 양면성을 외면한 행정이 아닐까.
- 교복 표준디자인제와 학생 사이 절충점은 무엇일까.
준: 교복을 단정히 입으라는 이유에는 ‘미관상’이 존재한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미관상’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둠: 일례로 화장을 즐겨하고 오던 아이가 어느 날, 화장을 하지 않고 학교에 왔다. 그러자 평소에 그 아이를 꾸짖던 한 남자 선생님이 “솔직히 화장한 게 낫다”고 말해 이중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단편적인 예만 보아도 교복 뒤에 숨은 민낯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준: 교육행정과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특정 연령대에 대부분 같은 옷을 입으라고 한다면 이를 결정하기 전에 교복이 학생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봤어야 한다. 교복의 기능에 중점을 뒀어야 한다.
둠: 디 벨레(DIE WELLE)라는 2008년작 독일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한 중학교를 배경으로 나치에 대해 철저하게 교육받은 학생들이 ‘파시즘식’ 수업을 접하면서, 반에서 요구한 셔츠를 맞춰 입게 되고, 자기들만의 마크를 만든다. 모두가 동등한 구성원이 된 듯 보이지만 곧 폭력적인 양상으로 바뀐다. 이는 독재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고라고도 볼 수 있다.
(CNB=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