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광화문 북측광장에서 열린 '홀로그램 시위'를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강소영 기자)
투명 스크린 속 가상의 사람들이 행진한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친다. 스크린 속 사람들의 모습은 얼굴 형상이 뚜렷하지 않다. 수백 개의 하얀 체형이 물결치듯 어우러져 마치 ‘유령’들이 집회를 열고 있는 듯 보인다.
지난 24일 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홀로그램 집회 장면이다. 가로 10m, 세로 3m 대형 천(스크린)을 세워놓고 거기에 홀로그램 영상을 비추는 방식의 퍼포먼스다. 천 위에는 각양각색의 탈을 쓴 이들이 “평화시위 보장하라” “집회는 인권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그들의 목소리가 광장을 메웠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3주년을 하루 앞둔 이날,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가 청와대 인근 집회를 금지한 것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집회를 기획했다.
▲광화문에 설치된 투명 스크린에 ‘2·24 앰네스티 유령집회’가 비춰지고 있다. 많은 취재진과 시민들이 스크린 뒷편에서 이를 카메라로 찍고 있다. (사진=강소영 기자)
스크린에는 120여명의 시민들이 등장하지만, 사전 제작해놓은 동영상을 상영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현장에는 장비 운용을 위한 20여명의 자원봉사자들만 참여했다.
시민들의 관심은 상당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홀로그램 시위다 보니 길 가던 이들은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휴대폰을 꺼내 촬영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번 홀로그램 시위는 지난해 4월 스페인에서 열린 ‘홀로그램 포 프리덤’에 이어 전 세계적으로 두 번째다.
서울시는 이번 집회를 문화제 성격으로 보고 광장 이용을 허가해줬다. 하지만 경찰은 홀로그램 영상일지라도 구호를 외치거나 집단 의사를 표현하면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여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유령 집회'는 경찰과의 마찰이 예상됐으나, 다행히 물리적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끝났다. (사진=강소영 기자)
이날 경찰은 3개 중대 240여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집회 내용과 참가자를 채증했다. 다행히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이번 홀로그램 집회가 법에 위배되는지를 검토하고 있어, ‘유령 시위’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CNB=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