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시간이 18분이라는 연설 기록을 세웠다. 사진은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이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무제한토론을 하는 은수미 의원에게 의제와 맞지 않는 발언이라며 항의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테러방지법안’ 통과를 막기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fillibuster)가 이틀째 계속되면서 국회가 공전하고 있다. SNS상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 만에 접해보는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옹호론과 의회정치를 무력화 시킨다는 비판론도 많다. CNB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필리버스터의 두 얼굴을 들여다봤다. (CNB=강소영 기자)
은수미, 50년만에 기록 갱신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오후 7시 7분부터 화장실도 가지 않고 5시간 32분간을 국회 본회의장 상단에서 연설했다. 바톤은 넘겨받은 은수미 의원은 10시간18분을 연설했다.
야당은 이틀째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고 있다.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이 다수당을 견제하고자 하는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방식이다. 지난해 TV드라마 ‘어셈블리(Assembly)’에서 초선 의원 진상필(극 중 정재영)이 필리버스터를 하다 탈진하는 모습이 클로즈업 되기도 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면서 필리버스터가 법테두리 안으로 들어왔다. 이전에는 단상을 점거하기 위한 여야의 몸싸움이 치열했고, 의사봉을 가진 쪽에서 봉을 두드리기만 하면 법안통과(일종의 날치기)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필리버스터를 방해하면 법위반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 신민당 박한상 의원이 국회에서 10시간 15분을 연설한 것이 최장기록이지만, 이번에 은수미 의원의 필리버스터로 인해 50여년간 유지해온 기록이 깨졌다.
미국에서는 현재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맞대결을 펼치고 있는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이 2010년 상원에서 8시간37분 연설한 것이 최장 기록이다.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하게 된 배경에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테러방지법이 뭐길래
이번에 야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에 나선 이유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에 대한 직권상정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테러방지법은 지난 2001년 11월 김대중 정부에서 발의됐다. 그 후 한나라당, 야당 순의 반대로 표류하다 북한의 핵실험과 IS의 전세계적 테러에 대비하자는 주장에 힘입어 ‘국회의장 직권상정’ 문턱에 다다랐다.
테러방지법의 핵심은 테러 관련 정보의 수집과 조사 권한을 국가정보원이 갖는다는 것이다.
이 법안 9조에는 국가정보원장이 테러 위험인물의 출입국과 금융거래, 통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금융기록을 조회하거나 통화 내역을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이 명시돼 있다.
또 법안에 따르면 국정원에서 분류된 테러 위험인물의 개인정보와 위치정보를 요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테러 활동을 위한 현장 조사나 문서 열람, 진술 요구,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추적이 가능해진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시선이 존재한다. 테러 정보의 수집·작성·배포 기능이 국정원에 집중되면 ‘안보 불안’을 빌미로 시민 기본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과, 세계가 테러의 위협에 놓여있으니 미리 테러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쪽이다.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에 대해 청와대(박근혜 대통령,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순서)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 대표가 각기 다른 입장을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무제한 연설, 빛과 그림자
이에 대해 청와대는 24일 “지금 북한이 국가 기간 시설(테러)이라든가 또 사이버 테러 등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압박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전날 야당의 행보에 대해 “국회 선진화법이 얼마나 잘못된 법인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19대 국회에서 더민주가 처음으로 행하는 필리버스터는 국민의 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입법을 방해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24일 마포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여당이나 막아서는 야당이나 무능하다”며 “안보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국회는 대테러방지법을 둘러싸고 다시 어떤 문제해결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여야 모두를 비판했다.
또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 아침’에 출연해 “정치라는 것이 서로 대화하고 소통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아니냐”며 “여야가 극단적인 대치를 하기 보다는 서로 상호 토론을 하고 얼마든지 대화로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야당은 더불어민주당 김광진→은수미 의원 이후 박원석 정의당 의원→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최민희 의원→강기정 의원→김경협 의원 순으로 발언해나갈 예정이다. 더민주는 소속 의원 108명 전원이 나서 다음달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CNB=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