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우리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도입으로 남북이 최악의 긴장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경협의 마지막 끈이었던 개성공단마저 폐쇄되면서 한반도의 미래는 짙은 안개속이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국회연설을 통해 “이제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북한 정권의 핵개발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다”며 사실상 대북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남북관계는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 이전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CNB가 개성공단이 폐쇄된 다음날인 지난 12일, 남북 간 최접경 지역인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용강리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 마을’의 한 교회를 찾았다.
마을 초입에서 군의 삼엄한 경계 속에 이적(본명 이기석) 목사가 취재진을 맞이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됐으니 이 교회가 마지막 남은 완충지대인 셈이죠.”(웃음)
교회는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민통선 마을 내에 있다. 이름은 ‘민통선 평화교회’다. 이적 목사가 말한 ‘완충지대’란 휴전선에서 유일하게 북한과 대립하지 않는 곳이란 의미다.
실제로 이 목사는 대북 전단 살포 반대운동, 평화시 낭송회, 오작교 예술제, 분단체험학교 등 다양한 반전평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목사는 2년 전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해외동포 한반도 평화 컨퍼런스’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우리 정부의 대북심리전은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취지의 연설을 한 것이 화근이 돼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교회가 당국으로부터 압수수색 당했고 이 목사는 이에 맞서 1년간 농성을 벌였다.
교회는 작게, 평화운동은 크게
▲이적 목사는 자신의 좌우명을 “교회는 작게, 평화운동은 크고 넓게”라고 말했다. 교회 신자를 많이 만드는 것 보다, 아동복지센터같은 시설을 설치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진=강소영 기자)
특히 이 목사는 일부 기독교단체들이 휴전선 인근 애기봉의 성탄 트리에 불을 밝히는 행사를 온 몸으로 막아왔다. 목사가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을 막는다? 얼핏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예수가 평화를 가르쳤기 때문에 평화를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화에 반하는 모든 행동은 남쪽이던 북쪽이던 사제로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죠.”
이 목사는 북한을 향해 보란 듯이 켜지는 이 등탑이 남북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가 대북심리전을 할수록 남북 간 긴장관계가 초래돼요. 제가 경계하는 것은 ‘남남갈등’이에요.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있는데, 그럼 남쪽과 남쪽끼리 부딪히게 되지 않습니까. 이런 싸움은 백해무익한 것이죠.”
‘민통선 평화교회’는 주택을 개조해 만든 작은 예배당이다. 한때 경찰이 그의 교회와 사택 등을 압수수색하며 끌어내려졌던 십자가는 격렬했던 시간을 잊은 듯 한쪽 벽에 고스란히 걸려있다.
“교회 건물을 크게 만드는 것은 예수사상이 아니죠. 교회는 작게, 평화운동·사회운동은 크고 깊게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98년 기자 출신인 그는 문인이 되겠다는 결심으로 민통선을 찾았다. 그곳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목회의 길로 들어섰다. 남한 최북단에 위치한 교회는 그가 목회를 결심하고 신학교에 들어간 이후 세운 첫 교회다.
당시 그는 군인 2~30명을 모아놓고 설교를 했다. 가끔씩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가 자신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삼청교육대에서 군홧발로 맞던 시절이 떠올라 힘들었다. 그는 1980년대초 전두환 정권이 만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오랜 세월 고초를 겪은 바 있다. 이후 ‘삼청교육대 최장기수’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기자 출신인 이적 목사는 문인이 되겠다는 결심으로 민통선을 찾은 후 신앙의 길로 들어서 남북 평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때문에 한때 '북측 동조'라는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진=민통선 평화교회)
“(교회 시작 당시) 교회 사역 신자를 많이 만들겠다는 목표를 두진 않았어요. 그랬다면 도회지에서 했겠죠. 복지와 평화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려면 시민운동을 전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목사는 민통선이 속해있는 김포시 시민단체 10개를 모은 연합체 시민연대를 만들었다. 이들은 애기봉 등탑 반대운동, 대북 삐라 살포 반대 운동 등 남북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들을 벌였다.
그는 안개가 자욱한 언덕 위에 세워져있는 확성기를 가리키며 “확성기를 켜도 북에서는 들리지 않아요. 남쪽에서 방송을 하면 북쪽에서 또 북쪽을 향해 방송합니다. 북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차단해 들리지 않게 하려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 목사의 교회에서 차로 5분 남짓한 거리에 비무장지대(DMZ) 철책이 있고, 철책 너머 임진강을 건너면 개성공단이다. 작금의 남북 현실은 그를 더 결연하게 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정치와 경제는 따로 가야 합니다.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했던 2010년에도 남북경협이 끊어지진 않았죠. 개성공단 폐쇄는 정부가 자충수를 둔 것입니다.”
이 목사를 뒤로 하고 나오는 길에 ‘용강리 경로당’에서는 점심준비가 한창이다. 길목 어귀에는 밥 짓는 냄새가 솔솔 풍겼고, 총을 맨 병사는 여전히 빠져나가는 차량에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철새들은 하늘 높이 군무를 추며 철조망을 넘나들었다.
(CNB=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