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논평’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녹색당의 플래카드가 홍대입구역 신호등 앞에 걸려 있다. (사진=강소영 기자)
“새누리당과 조선노동당은 ‘여권 연대’ 중단하라”
지난 3일 홍대입구역 앞을 지나치다 사람들 사이에서 펄럭이는 초록색 물체를 봤다.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플래카드는 녹색당이 내건 논평이었다.
북한의 핵무장에 맞서 우리도 핵을 보유하자는 여당 중진들을 향해 시원스레 한방을 날린 것.
녹색당은 그랬다. 마치 SNS 시인 이환천처럼 짧고 강렬한, 소름 돋는 풍자로 서민들 가슴을 찌른다.
이환천이 누구냐고? ‘제목:커피믹스, 내목따고/ 속꺼내서/ 끓는물에/ 넣으라고/ 김부장이/ 시키드나’ ‘제목:다이어트, 먹지를 말든가/ 말하지 말든가/ 이러나 저러나/ 니입이 문제다’
이런 류의 시를 쓰는 사람이다. 이 땅의 수많은 ‘미생’들이 그를 통해 울고 웃고 있다.
다시 녹색당 얘기다. 답답했던 느낌을 뻥 뚫어주는 느낌이라고 해서 일명 ‘사이다 논평’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정당이다.
“하늘도 정치도 뿌옇다! 우린 미세먼지와 싸웁니다”
“케이블카 걸려고 설악산 새로 만드나, 엉터리 심의와 환경영향평가, 무효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대통령의 손보다 국민의 눈이 빠르다“
“시나리오 쓰고 있다. 천하의 대통령이 왜 이렇게 후달리나?”
▲영화 ‘암살’의 문구를 인용한 미세먼지에 대한 논평이 눈길을 끈다. (사진=녹색당 트위터)
7800명의 당원으로 이뤄진 녹색당은 2014년 선관위 기준 진성당원이 60%에 달한다. 현재 녹색당은 올해 총선에서 ‘국회의원 1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뛰고 있다.
녹색당의 색깔은 녹색이다. 좌·우를 떠나 반핵·반전 등 환경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지구를 지키자’는 마음이 모여 정당이 됐다. 1979년 독일에서 좌우익 환경보호 시민단체들이 연합해 창설된 것이 원조다.
독일 내에서 녹색당은 기성정당과는 다른 환경보호주의를 기반으로 젊은층과 여성층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2020년까지 원전을 중단하고 신재생 에너지를 만든다는 계획을 실천중이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스위스 등 유럽 각국의 녹색당들 또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은 물론 동물보호, 여권신장, 인간성 회복 등을 기본강령으로 내세운 ‘새로운 녹색정치’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1989년 당시 교수·학생·작가·화가 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30여 명은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창당을 준비했으나 무산됐으며, 이후 2012년 3월 정식으로 녹색당의 창당을 알렸다.
▲녹색당원들이 ‘풀뿌리정치 워크숍’에 참여해 환하게 웃음 짓고 있다. (사진=녹색당)
녹색당은 이주민·성소수자·장애인·동물권 등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을 얘기한다.
김수민 녹색당 대변인은 지난 6일 CNB와의 인터뷰에서 “기존의 진보는 ‘경제성장을 해야만 한다’는 목적에 뿌리를 뒀지만, 녹색당은 성장보다 성숙을 중시하고 돈벌이보다 살림살이 경제의 중심을 둔다”며 “인간사회와 자연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게 아니라 생태적 지혜 속에서 사회정의를 재발견하기를 원한다”고 언급했다.
유럽 일부국가에서 현재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론’이 김 대변인의 말과 통한다.
스위스에서는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성인 1인당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295만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놓고 오는 6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일을 하지 않는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데모스코프 연구소의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기본소득이 보장돼도 일을 그만두는 사람은 2%에 불과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핀란드 또한 모든 국민에게 일괄적으로 월 800유로(약 101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기존의 복지 혜택을 폐지하는 복지 일원화 방안 도입을 검토 중이다.
김 대변인은 ‘기본소득’과 관련 “기존 복지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인간 존엄의 상시적 보장을 추구하는 정책”이라며 “재원 마련 때문에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기본소득 논의가 조세부담을 덜고 ‘더 내고, 그보다 더 보장 받겠다’는 여론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당원들이 동대문구에 위치한 흥인지문 앞에서 반핵·미세먼지 등의 관심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녹색당)
녹색당은 젠트리피케이션, 성소수자, 동물학대 등 사회적 편견이나 일상적인 삶과 밀접한 문제들을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데도 힘 쏟고 있다.
김 대변인은 “모든 나라는 ‘녹색당이 국회에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로 나눠진다”면서 “기후변화는 땡볕에서 일하는 사람, 노인, 난방이 어려운 빈곤층, 폐사하는 가축 등을 먼저 희생시킨다. 방사능 피폭은 여성과 아동에게 더 유해하다. 녹색당은 가장 힘겹고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하는 정당”이라고 말했다.
(CNB=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