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8월15일이 건국일이냐, 정부수립일이냐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과거에 ‘1948년 건국’을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건국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CNB=강소영 기자)
1919년과 1948년으로 건국년도 양분
과거 대통령 대부분 ‘1948=건국’ 인식
김종인 위원장 비판 결국 ‘자가당착’
이 논란은 이명박 정부 시절,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인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뉴라이트 계열 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촉발됐다.
1948년 광복절이 건국일이라는 이들의 주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상해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 4월13일을 건국일로 봐야한다는 측이 맞서면서 역사논쟁이 불붙은 것.
CNB가 김종인 위원장의 과거 발자취를 따라가 보니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제외한 전직 대통령들 모두가 김 위원장처럼 건국일과 정부수립일을 혼동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1919년 세워진 임시정부의 법통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번 논란은 김 위원장의 과거 발언에서 비롯됐다. 김 위원장은 2002년 한 언론사에 기고한 칼럼에서 “대한민국은 건국 54주년을 맞는다”고 했다. 2002년에서 54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48년이다. 이 해를 건국년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2007년 다른 언론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지칭했다.
그러자 누리꾼들은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아닌 1948년 광복절로 보고 있는 뉴라이트와 같은 생각”라며 김 위원장을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내 역사 인식과 전혀 다르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더민주당은 “김 위원장이 2002년 언론 기고 칼럼과 2007년 언론 인터뷰 등에서 ‘건국’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건국절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나기 전의 일로 ‘정부 수립’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뉴라이트 계열 단체가 건국절을 본격적으로 주장한 시점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2008년”이라며 김 위원장의 과거 발언이 건국절 논란이 본격화되기 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2007년 이후에는 1948년=건국일 주장을 편 흔적을 찾기 힘든 걸로 봐선 김 위원장과 더민주당의 해명처럼 역사논쟁이 불붙은 시점 이후에는 입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민주당의 해명처럼 김 위원장이 이전에는 건국일과 정부수립일을 혼돈해서 사용했다. 더민주당은 “김 위원장이 2008년 정부 행사에서 ‘회갑을 맞이하는 해’라고 말한 것도 정부 수립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라며 “정부 수립과 건국이라는 표현이 갖고 있는 의미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고 쓴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이명박, 가장 강도높게 ‘1948=건국’ 주장
CNB가 역대 대통령들의 기록을 분석해보니, 대부분 대통령들이 과거에 김 위원장처럼 정부수립과 건국을 혼용해서 사용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1945년 이후) 광복 23년간의 우리 대한민국 ‘건국사’는 거듭된 좌절과 시련을 거쳐 조국 근대화의 성년기를 맞이하는 국가 재건의 시대였다”며 1945년을 건국의 해로 해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 땅에 민주공화국을 세운 지 40년”이라며 1948년을 사실상 건국으로 봤다.
2003년 취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해방과 건국의 역사 위에서, 자유를 누리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가 수립된 지 55년”이라고 말했다. 건국과 정부수립을 뒤죽박죽으로 사용한 표현이다.
가장 여러 차례에 걸쳐 ‘1948년 건국’을 주장한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6월 ‘건국 50주년을 역사의 전환점으로’라는 대국민 성명에서 “올해로써 건국 50주년을 맞았다”고 선포했다. 그해 8월14일 ‘대한민국 50년-우리들의 이야기전 개막식’에서는 “대한민국 건국은 공산주의자들의 극단적인 반대 속에 이뤄졌다”며 1948년 건국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그해 8월15일을 ‘건국50주년기념일’로 명명하며 대규모 광복절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 취임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10년 만에 ‘건국 60주년’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이 전 대통령은 “올해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라고 밝혔고, 같은 해 삼일절 등 각종 기념사를 통해 “건국 60주년”을 얘기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뉴라이트 진영은 1948년 8월15일은 건국일로, 당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국부)로 추앙하기 시작했다.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유일하게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보지 않았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강조했던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 후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수립된 세 곳(서울, 노령, 상해)의 임정이 통합된 단일 민주정부다. 민주공화정을 표방하고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도입해 대한민국의 법통을 세웠다”고 밝혔다.
이처럼 김영삼 대통령 외의 역대 대통령들은 ‘건국’과 ‘정부수립’을 혼용해 사용해왔다. 야권이 “1948년 8월15일이 건국일이라면 상해임시정부 법통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실은 이들이 집권했던 시절에도 ‘건국’이 강조돼 왔던 것이다.
반대로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이라고 주장하는 여권 또한 과거에는 사실상 ‘정부수립일’에 더 무게를 뒀었다.
어디에도 김구 선생 등 독립투사들이 세운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말하는 이가 없었던 시절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건국 발언에 대한 비판은 결국 자가당착인 셈이다.
(CNB=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