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 등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자칫 6월 국회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이번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여야가 다른 반응을 내놓고 국회 사무처까지 나서서 반박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정국이 혼란 속에 빠지는 분위기다.

▲국회 본회의장(사진=CNB)

◇ 박근혜 대통령 "국정 마비 되고 정부 무기력화 될 것"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공무원연금법안 처리 과정에서 공무원연금과 관계없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문제를 연계시켜서 위헌 논란을 가져오는 국회법까지 개정했다"며 "이것은 정부의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어서 걱정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가뜩이나 국회에 상정된 각종 민생 법안조차 정치적 사유로 통과되지 않아 경제살리기에 발목이 잡혀 있고 국가와 미래세대를 위한 공무원연금개혁 조차 전혀 관련도 없는 각종 사안들과 연계시켜 모든 것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히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정부의 정책추진은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그리고 우리 경제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 국회에서도 이번 개정안과 동일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에 대해 위헌소지가 높다는 이유로 통과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며 "이는 국회 스스로가 이번 개정안이 위헌일 소지가 높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회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여야가 일자리 창출을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국민 앞에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대통령인 저나 국민들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가 서로 존중하고 순항할 때 국민이 안심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앞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개정된 국회법을 통과시킨 여당과 야당이 해당 조항에 강제성이 있다 없다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어 국민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며 "강제성 유무에 대한 (여야) 입장이 통일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법원의 심사권과 행정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상 권력분립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면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의 행정입법권을 침해하는 위헌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 與 지도부 '혼란', 野·국회사무처 '반박'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대로 행정입법에 손을 대는 국회법 개정안은 지난 18년 여러 차례 발의 됐지만 제대로 통과된 적은 없었다. 4차례에 걸쳐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 강화만 이뤄졌을 뿐이다.

현행 국회법 98조 2항은 '대통령령 등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로 개정됐다.

이 부분에 대해 여야는 다른 해석을 내놓은 상태다. 새누리당은 '강제성이 없다'고 판단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강제성을 띠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으로 인해 여당 지도부는 딜레마에 빠졌고 당내 갈등은 불거지고 있다.

계파 갈등으로 내분에 싸여 있던 야당은 호재를 만난듯 당력을 집중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에 의무는 부과했지만 국회의 시정요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강제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친박 의원들의 반발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야당 지도부를)만날 때 (통일된 입장을)이야기해볼 수는 있다"며 "우리 입장은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회의 입법 취지는 강제력을 부여한다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법학자들의 해석을 지켜볼 부분이지만 당시 여야가 합의한 입법취지는 강제력을 부여한다는데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정 정책위의장도 "개정된 국회법은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한 사항을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강제력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 뿐 아니라 국회사무처 또한 이날 "국회법 개정안은 부당한 행정입법권 침해가 아니다. (정부에 시행령 수정·변경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심사 과정에서 정부의 입장을 듣고 여야 위원들이 충분한 토론을 거쳐 합의가 이뤄질 경우에 가능하다"며 위헌 논란을 정면 반박했다.

이에 따라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