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는 좋았다. 한국생산성본부가 주최한 출산장려 포스터 공모전 말이다. ‘저출산’은 이제 한국에서 외면하기 힘든 국가적 당면과제가 됐다.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생산성본부가 저출산을 주제로 그래픽기술자격 포스터 공모전을 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더구나 학생들의 디자인 역량과 창의력 제고를 위해 공모전을 개최했다는 데 누가 토를 달까.
그런데 금상을 수상한 ‘하나는 부족합니다’라는 포스터가 논란이 됐다. 외동아를 둔 한국의 수많은 부모의 공분을 산 것이다. 이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외동아에게는 형제가 없기 때문에 사회성이나 인간적 발달이 느리고 가정에서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이루어 보았으므로 자기중심적이 되기 쉽습니다.”
외동아들은 정말 그런가? 외동아들이 ‘사회성’이나 ‘인간적 발달’이 더디고, ‘자기중심적’이라는 내용은 일반적인 편견일 수 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단다.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형제자매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라고 말한다.
▲한국생산성본부가 시행한 제3회 그래픽기술자격(GTQ) 포스터 공모전 금상 수상작.
편견일지언정 외동아들이 사회성이 떨어진다 치자. 포스터를 본 부모들이 더욱 분노한 것은 그림 때문이다.
‘하나는 부족합니다’라는 글귀 아래에는 입사귀가 하나인 새싹과 두 개인 새싹이 그려졌는데, 입사귀가 하나인 것에는 흑백 바탕에 누렇게 시든 모습으로, 반면 두 개인 것은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생생한 푸른색 새싹이 그려져 있다.
당장 “외동아가 시든 싹이냐!”는 반응들이다. 출산장려는커녕 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상처만 주고 있다며 분노했다. SNS에서는 많은 이가 외둥이를 낳고 키울 수밖에 없는 현실은 생각지도 않고 외둥이 비하 포스터에 상을 줬다고 반발했다.
한국생산성본부는 지난 9일 사과문을 내고 수상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수상작 선정에 있어 정성이 부족하고 ‘한 자녀’ 가정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선정위원회의 심의 등 관계절차를 거쳐 수상의 취소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공모전이 개최된 지 이미 7개월이 지났다. 작년 5월에 개최돼 8월에는 경복궁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뒤늦은 사과와 무성의한 조치에 한국의 외동아들과 부모들만 상처 받은 상황이다.
비단 이번 포스터 공모전뿐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말 유치원 원아모집 개선안을 발표하고 중복지원자 합격 취소를 공언했지만, 이 방침은 무산됐고 조희연 교육감은 사과했다. 시교육청 방침을 충실히 따른 부모들만 피해를 본 꼴이다.
만 3세에서 5세까지 누리과정 지원은 또 어떤가. 예산편성으로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갈등을 빚으며 아이 둔 부모 속앓이만 하게 했던 누리과정은 결국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얼마 전 신년사에서 “국가가 책임지겠다”며 입장을 밝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한국의 부모들은 고달프다. 아이를 낳는 순간 첩첩산중 현실을 헤쳐가야 한다. 손녀의 유치원 당첨에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하나는 부족하다’고 말하기에 앞서 살펴야 하는 지금 여기의 현실인 것이다.
안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