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말미 최영후 전무(이경영 분)가 장그래의 인사기록부를 살펴보는 장면에서 잠시 공개된 주소지는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 441-12’였고, 본적지는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1490-24’였다.
잠시 스쳐지나간 장면이지만, 이 장면을 눈여겨본 몇몇 시청자들은 실제로 해당 주소지를 검색해봤고, 두 주소 모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주소지란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기자는 사무실 내의 각종 가구와 서류는 물론 사원증과 목줄 같은 사소한 소품에 이르기까지 깨알 디테일을 자랑한 미생 제작진이 뜬금없이 가짜 주소지를 적었을 리는 없다는 판단으로 실제 주소지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장그래의 집 주소와 유사한 지형은 340번지 주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은평구 서쪽을 둘러싼 봉산(鳳山)의 남쪽 자락에 위치한 수색동 340번지 주변은 전형적인 오래된 주택가다. 산밑에 위치해있고, 좁은 골목길과 허름한 주택들 사이에 계단도 빈번히 배치되어 드라마 속 장그래의 집 주변과 상당히 유사한 풍광을 보여준다.
인근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해당 지역은 서울에서도 이젠 찾기가 쉽지 않은 달동네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특유의 풍광을 필름에 담기 위해 방문하는 TV·영화 제작팀과 사진작가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미생 제작진이 이 지역의 정경을 염두에 두고 인사기록부에 해당 주소를 명기했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부분이다.
9화를 비롯해 최종화까지 종종 등장했던 장그래의 집 주변을 실제로 촬영한 장소는 낙산성곽길이 보이는 종로구 창신동 인근으로 알려졌지만, 어쩌면 제작진은 수색동 340번지 일대도 장그래의 집 촬영을 위한 후보지로 검토했을 가능성이 있다.
굳이 비슷한 번지수에서 딱 1을 더한 1490-24를 본적지로 정한 것은 미생 제작진들 중 해당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이 지역 역시 수색동 340번지 일대같은 산동네는 아니지만, 다세대주택이 즐비한 서민주거지다.
수색동과 신림동은 1960~80년대 고도성장기에 서울 외곽 빈민촌으로 밀려난 도시빈민과 서민들이 살던 대표적인 지역이다. 짧게 지나가는 장면 속에 굳이 두 지역을 장그래의 주소지와 본적지로 명시한 것은, 제작진이 장그래의 출신배경에 리얼리티를 배가하기 위한 또 하나의 깨알 디테일 연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