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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땀 한 땀, 전통에 미래를 수놓다

<경북의 장인 ⑦>5대째 규방문화의 꽃 이어온 김시인 자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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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희정기자 |  2014.10.31 17:22:06

▲수틀 위에서 수를 놓고 있는 김시인 장인.(사진/김희정 기자)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하는 사람들.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보유단체들은 음악·무용·연극·공예기술 및 놀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경상북도는 현재 42개 종목(국가지정 12개 종목, 도지정 30개 종목), 47명의 보유자와 14개의 보존회(국가지정 4개 종목, 도지정 10개 종목)가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의 뛰어난 능력이 중심이 되는 개인종목(국가지정 8개 종목, 도지정 20개 종목)을 운영하고 있다.

도는 이들 무형문화재에 대한 체계적인 전승·보존을 위해 전승지원금 지급, 전수교육관 운영 등 적극적인 무형문화자산에 대한 유지관리, 무형문화재 인프라 구축 등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정부의 지원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심의 손길이 부족한 무형문화재가 다수 집계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자료를 한 국회의원이 공개하기도 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보유자가 없어 빛을 잃은 문화재가 6개 종목, 전수조교가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재가 26개 종목이며, 이수자가 없는 문화재도 3개 종목이나 된다.

이렇듯 산업구조의 재편으로 인한 생활의 현대화로 전통문화 전승기반이 취약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길게는 수 백 년을 이어온 우리의 문화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무관심으로 그 찬란한 빛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단 자치단체의 지원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알고 있는 선조들의 유산을 후대에 전할 수 없다면,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선조들의 유산을 후대에 잘 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향토문화유산을 전승하고 있는 경북 장인들의 일상과 삶의 공간 속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또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중한 우리의 전통 가치를 지켜가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수를 놓은 정성스런 손길.(사진/김희정 기자)

#.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수틀 위에 새빨간 비단 천이 놓여있다. 정성스런 손길을 따라 바늘과 실이 물 흐르듯 흘러내린다. 비단 천에 꽂힌 바늘을 타고 한 올 한 올 색실이 내려와 천속으로 스며든다. 어느새 가느다란 색실은 붉은 태양이 되고, 화려한 모란꽃으로 피어나고, 한 마리의 봉황이 돼 날아오른다.

옛 여인들의 취미 생활이자 정신수양의 도구이기도 했던 자수는 규방문화의 꽃이라 불린다. 여인들은 직물 위에 여러 가지 색깔의 실로 다산과 장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수를 놓았다.

2006년 10월 26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3호 자수장(刺繡匠)으로 지정된 김시인(69) 장인의 솜씨를 보고 있자면 마치 한 폭의 동양화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자수장으로 지정된 무형문화재는 전국적으로 몇 안 되며 경북지역에서는 그가 유일하다.

◆ 자수기예 중 가장 어렵다는 열쇠패 재현

“수틀 앞에 앉아서 수를 놓으면 모든 잡념도 사라지고 밤새는 줄도 몰랐어요. 저도 모르게 자수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고 결국, 평생을 자수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는 1947년 경북 예천군 보문면에서 정미소업을 하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갓집은 하회마을 류성룡 선생의 형인 겸암 류운룡 선생의 후손이며, 어머니 류현이 여사의 외가는 목은 이색의 후손가로서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예의범절과 규방문화를 익혔다. 이후 문경시 산양면 송죽리 덕암마을로 시집오면서 문경에 자리 잡았다.

그는 마을 내에서도 수를 잘 놓기로 소문이 났던 친정어머니로부터 자수에 대한 기초적인 것을 배웠고, 어머니를 비롯한 외가계열로 5대째 전통자수를 물려받았다.

“어머니가 수를 놓다 잠시 자리를 비우면 얼른 수틀에 가서 앉았죠. 어릴 때이니 뭘 제대로 할 줄 알겠어요? 어머니의 작품을 망치기 일쑤였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혼내지 않으시고 늘 ‘잘한다, 참 예쁘구나’ 해주셨죠. 그만큼 수를 놓는 것이 좋았어요.”

▲김시인 장인이 수를 놓을 천과 실을 직접 염색해 말리고 있다.(사진/김희정 기자)

이후 1966년 전통 자수계의 거장 김계순 선생을 만나면서 전통자수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우게 됐다. 스승의 특수 기법인(남바위, 조바위, 아얌, 각종 주머니류 등) 침선에 자수를 접목 시키는 비법을 완벽하게 전수받았으며, 십여 년 전 부터는 자수기예 중 가장 어렵다는 열쇠패 재현에 온 힘을 쏟아 이제는 열쇠패 재현의 최고 전문가가 됐다.

타고난 재능에 쉼 없는 열정과 끈기가 더해져 그를 최고의 자리에 이르게 한 것이다. 1970년에는 ‘송휘전통자수연구실’을 개원하고 이곳에서 주부들을 상대로 전통자수를 전수했다.

베갯모, 밥상보, 수저 주머니, 경대덮개 등 전통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을 주로 만들고 있는 그는 기존 자수의 틀을 과감히 벗어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병풍, 벽걸이액자, 의상 등에만 수놓던 자수를 목기류에 접목시켜 전통자수문화 보급에 앞장섰다.

전통자수를 실생활에 접목해 목단숄과 자수가 놓인 가방 등을 만들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값비싼 밍크숄 보다 목단숄, 외국의 명품백 보다 우리의 자수가 놓인 가방이 더 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육골침’을 재현해 사라져 가는 방법을 복원하기도 했다. 육골침은 베개 속을 6등분해 채워 광목으로 겉을 싸서 완성하는 것이다.

◆ 전 세계에 전통자수의 아름다움 수놓아

자수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애정은 2004년 그 빛을 발했다. 문경시의 유교문화관 개관 시 자신의 평생작품 86점을 기증한 것. 평균 6개월에서 1년씩 공들인 작품들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팔면 많은 돈을 벌수 도 있겠지만 작품이 훼손될 우려도 있고, 후손들이 마음 놓고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목단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김시인 장인.(사진/김희정 기자)

특히 그는 아시아와 유럽, 미주 등에서 수차례 전시회를 여는 등 우리의 전통자수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의 사후에야 전시될 수 있다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영구 소장될 만큼 그 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 ‘흉배모음병풍’이라는 작품인데, 지난해에는 박물관의 도록과 기념엽서에도 작품이 들어간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또 캐나다 왕립박물관과 영국 버킹엄궁전 등에 그의 작품이 전시되고, 수년 전에는 몽골 울란바토르대학에 작품 3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영국 버킹엄궁전에 전시된 열쇠패는 1999년 엘리자베스 여왕 방한 당시 선물한 것이다.

몇 년 전 그에게 기쁜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자수에 관심을 가졌던 딸 고윤정(40)씨가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것.

그는 딸이 뒤를 이어 자수의 가업을 잇겠다고 했을 때 무척 뿌듯했다고 했다.

“비단 자수뿐만이 아니라 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누가 시킨다고 억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저 좋아서 해야 평생을 이어갈 수 있지요. 딸의 마음가짐이 그렇기에 기뻤습니다.”

수를 놓는 재능도 순수하게 자수를 좋아하는 마음도 모녀가 꼭 닮아있다.

그저 좋아서 시작했던 자수로 무형문화재자리까지 오른 그는 수를 놓을 때면 잠자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깝고, 자수를 하지 않는 날이면 수틀과 비단 천, 오색실이 눈에 아른거려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 그의 꿈은 경북도에 자수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그는 “자수박물관을 통해 우리 전통자수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것은 물론, 후학 양성에도 힘써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자수의 맥을 잇고 싶다”고 말했다. (경북=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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