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에서 판매까지 ‘예술 백화점’
회화·조각에 친환경·NFT 덧입혀
유명작가 50명, 180여점 선보여
모이지 말고 움직임도 줄이고 마스크 없이는 대화도 금해야 하는 ‘자제의 시대’. 출타는 왠지 눈치 보입니다. 그래서 CNB가 대신 갑니다. 재밌고 새롭고 어쨌든 신선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발과 눈과 손과 귀에 담은 모든 것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3년차에 접어든 현대백화점의 예술 프로젝트에 다녀왔습니다. <편집자주>
대표색은 허상일 뿐이다. 친환경은 녹색으로만 대변되지 않는다.
흉상으로 제작된 인물들의 얼굴이 누렇게 떴다. 하늘의 별이 된 마이클 잭슨, 오드리 헵번, 로빈 윌리엄스부터 아이언맨, 헐크 같은 캐릭터들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들이 일관되게 노란빛을 띠는 이유는 소재에 있다. 버려지는 택배 상자가 기초가 됐다. 정현철 작가의 연작은 무용하게 된 물건을 유용하게 만드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을 통해 완성됐다. 파손주의란 경고문을 붙이고 내용물을 감싸던 상자가 눈으로만 조심히 감상해야 할 작품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현대백화점이 2020년부터 매년 두 차례 여는 ‘현대 판교 뮤지엄’이 5회째를 맞았다. 상·하반기에 한 번씩 백화점을 미술관으로 바꾸는 행사다. 올해는 오는 17일까지 현대 판교점에서 국내외 작가 50여 명의 예술 작품 180여 점을 선보인다. 3년차에 접어든 만큼 새로운 시도가 더해져 방문객을 맞는다. 회화와 조각을 중심으로 내보이던 것에서 두 열쇳말이 추가됐다.
디지털과 예술의 만남…새로운 체험
첫 번째는 최근 백화점 업계가 주시하고 있는 ‘친환경’이다. 건물 5층 두 에스컬레이터 사이, 정 작가의 작품과 마주보고 폐기물을 가구 등으로 재탄생하는 강영민 작가의 작품들이 나열됐다. 그 가운데를 거니는 사람들은 탐정놀이 하듯 물체의 기원을 파헤친다. “진짜 박스야?” 머리카락도?” “저 의자는 호스로 만든 것 같은데? 튜브인가?” 대부분의 생각은 맞을 것이다. 한번쯤 쓰레기장에서 봤던 물건들이기 때문에 기시감이 들 만하다.
두 번째는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다. 요즘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상이다. 복제와 위조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지며 디지털 예술에서 각광받고 있는 기술이다. 10층으로 발길을 올리면 로비에 마련된 대형 영상기기가 눈에 꽉 차게 들어온다. 그곳을 무대로 NFT 아트 거래 플랫폼 ‘닉플레이스’의 대표 작품 10여 개가 재생되고 있다.
동적인 작품은 이뿐만 아니다. 1층 열린광장에는 ‘미디어큐브’가 설치됐다. 물고기가 사면을 넘나들며 유영하는 등의 미디어 아트 작품들이 팔딱팔딱 생생하게 뛰고 있다. 기술과 예술이 접목돼 신선함을 전달한다.
이우환·김환기 등도 한 자리에
10층에 전문 갤러리처럼 꾸민 공간에는 거장들의 이름이 넘실댄다. 김환기·이우환·김창열·천경자 등 국내 예술 거목에 데이비드 호크니·쿠사마 야요이·요시토모 나라 등 해외작가의 작품이 대거 내걸렸다.
특이점은 작품 옆에 붙은 표시다. 예컨대 ‘천경자 <노오란 산책길> 540만원’처럼 가격을 명시했다. ‘판교 아트 뮤지엄’은 전시회이면서 동시에 판매의 장이기 때문이다. 작품 소개 옆에 노란 스티커가 붙었다면 소장 기회는 다음으로 미뤄야 한다. 이미 팔렸다는 뜻이다.
아이들을 위한 전시 공간도 마련됐다. ‘그림책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인 프랑스 작가 엠마 줄리아니의 '나, 꽃으로 태어났어'와 연계한 체험공간이 7층에서 운영 중이다. 관람에 그치지 않고 참여를 권하는 것이 특징. 바구니 색과 동일한 색깔의 인형들을 골라 담거나 그림자놀이처럼 벽을 배경으로 한 꽃 조형물에 플래시를 비춰보는 식이다. 작품에 유희가 더해져 아이들의 촉각을 자극한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관계자는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예술작품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고객들이 백화점 내에서 손쉽게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콘텐츠를 지속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