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조직명에 ‘경험(experience)’ 신설
조주완 LG전자 사장 “F·U·N 경험” 강조
이유는? 고객차원 넘어 ‘팬心’ 확보 경쟁
그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건 살 때 한번은 써봐야 지갑을 여는 ‘익스피리언슈머’(experience+consumer)다. 체험을 중시하는 ‘익스피리언슈머’의 등장에 기업들도 이들의 구미에 맞는 경험 전달에 집중한 요소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특명은 무엇을 겪게 하고 구매의 확신을 갖게 할 것인가. CNB가 어떤 손맛을 전하는지 각양각색 킬링 포인트를 짚어본다. 이번 편은 새해에 체험으로 승부수를 띄운 전자업계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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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하게 하라”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안개에 갇힌 시장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탐색기에 '고객 경험'을 입력했다.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우선적인 체험을 제공해 소비자 이상의 팬으로 유입하려는 전략이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한 이러한 사업 구상은 새해 들어 속도를 더욱 높일 전망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뻔하지 않게
작명에서 확고한 방향성이 엿보인다. 삼성전자는 새해를 앞두고 조직을 재정비하면서 기존 CE(Consumer Electronics)와 IM(IT & Mobile Communications) 부문을 통합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 ‘DX(Device eXperience)’이다. 명명에 경험(experience)을 반영했다. 이 조직은 VD(Visual Display), 생활가전, 의료기기, MX(Mobile eXperience. 기존 무선사업부), 네트워크 등의 사업부로 구성된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 명칭 변경은 중장기 사업 구조와 미래지향성, 글로벌 리더십 강화 등을 반영한 것”이라면서 “D(Device)는 세트 부문의 업(業)의 개념을 표현한 것이며, X(eXperience)는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통한 ‘고객 경험 중심’이라는 브랜드의 방향성을 제시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에게 감각(感覺)적 요소를 전한다는 분명한 색채를 띤 조직인 것이다.
LG전자는 새로 부임한 수장의 일성으로 새해 목표 지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지난해 11월 LG전자 CEO에 오른 조주완 사장은 얼마 전 임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띄우면서 “고객 감동을 위해 F·U·N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로 명확하게 자리매김해야 한다”며 “고객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고객경험 혁신을 가속화하자”고 당부했다.
조 사장이 강조한 F·U·N 경험은 ‘한발 앞선(First), 독특한(Unique),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New) 혁신적인 고객경험’을 줄인 표현이다. 구성원들에게 뻔하지 않은 발상을 주문한 것.
조 사장은 특히 “고객은 제품이 아닌 경험을 구매한다는 관점으로 우리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며 “LG전자가 고객에게 ‘일상에서 당연한 선택’이자 ‘앞서가는 삶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관점을 고객 입장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객과 다양한 접점을 구축해 소통하는 사업모델, 한 번 경험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고객경험을 제공하는 사업방식, 차별화된 고객경험을 연구하고 기획하는 조직역량 등 모든 영역에서 고객경험 혁신을 이뤄내자”고 당부했다. 막 출항한 ‘조주완 LG전자호’가 닻을 내릴 지점을 명확하게 공표한 것이다.
‘체험에 집중’은 작년부터 본격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의 정도가 널뛰기를 하는 와중에도 양사는 ‘체험 마케팅’이란 끈을 놓지 않았다. 신제품 출시마다 ‘경험적 요소’를 더해 특장점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체험존을 연 장소를 보면 각사의 개성이 드러난다.
삼성전자는 신발 관리기 ‘비스포크 슈드레서’를 출시하면서 영화관, 골프장, 호텔에 이 제품을 써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영화 보는 동안, 라운딩 후, 객실에서 쉬면서 신고 온 신발을 청결하게 관리하라는 의도였다.
또 빔 프로젝터 ‘더 프리미어’를 알리기 위해서는 한 호텔 야외 피크닉 공간에 체험 공간을 열기도 했다. 다양한 환경에서 고화질을 시청해보라는 취지였다.
LG전자는 주로 젊은 층이 모이는 핫플레이스로 갔다. 특히 힙스터들의 성지로 불리는 성수동을 내비게이션에 빈번히 입력했다.
식물생활가전 ‘LG 틔운(LG tiiun)’을 선보이면서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플라츠’에 정원을 꾸몄고, 이곳과 이웃한 패션 편집숍 ‘수피’에는 뉴트로 콘셉트의 ‘금성오락실’을 열기도 했다. 어둑한 실내에서 추억의 게임을 즐기며 자사 ‘올레드 TV’의 화질을 느껴보라는 것이었다. 두 곳의 운영 취지는 이용이나 사용이 아닌 종합적인 체험에 방점이 찍혔다.
새해에는 보폭을 더욱 넓힌다. LG전자는 직원이 응대하지 않는 ‘무인매장’을 19곳으로 추가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5월 전국에 무인매장 9곳을 연 이후 누적 방문객이 6000명에 달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LG전자 측은 “무인매장 방문객 가운데 MZ 세대인 20대와 30대가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들이 무인매장을 찾는 것은 부담 없이 자유롭게 제품을 체험해 볼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두 회사가 고객 경험에 집중하는 이유는 소비자 이상의 팬으로 유입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 회사 제품에만 있는 고유성을 전달해 오랜 고객으로 잡아두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애플이나 나이키를 즐겨찾는 소비자들은 충성도가 높다”며 “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자사 제품에 타 브랜드가 끼어 들어올 틈을 안 주면서 독자적 세계관을 구축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기업들이 고객 경험을 바탕으로 팬심을 확보하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보인다”며 “성패는 얼마나 유기적이게 브랜드 라인업을 꾸리느냐에 달렸다”고 조언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