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그룹이 제주항공을 앞세워 이스타항공을 인수했지만 앞날이 안갯속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가 큰 시련을 겪고 있는데다, 이스타항공의 열악한 재무구조로 인해 제주항공까지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CNB가 이번 인수로 저비용항공업계 1위로 올라섰음에도 웃을 수 없는 애경의 속사정을 엿봤다. (CNB=도기천 기자)
자본잠식 이스타에 코로나 쓰나미 덮쳐
이스타 인수한 제주항공까지 위기 직면
애경그룹, 긴급수혈 카드 놓고 고민 깊어
저비용항공사(LCC) 제주항공이 또다른 LCC 이스타항공을 지난 2일 인수했다. 이스타항공의 모회사 이스타홀딩스 지분 51.17%를 545억원에 매입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 것.
이로써 국제선 시장점유율 2위인 아시아나항공과의 격차는 2.7%포인트로 좁혀졌고, 4위 진에어와의 격차는 7.0%포인트로 벌어졌다. 사실상 양대 대형항공사(대한항공·아시아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넘어야할 산이 높다. 우선 시급히 이스타항공에게 수혈을 해줘야 한다.
이스타항공은 2018년에 47.9%의 자본잠식률을 기록했다. 2017년 70.7%에 비해 나아졌지만 여전히 재무구조가 열악하다. 자본잠식은 적자 때문에 기업이 원래 갖고 있던 자기자본이 줄어드는 현상을 뜻한다. 자본잠식률은 기업의 부실 정도를 따지는 주요기준이다.
아직 공식집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항공업계는 일본의 수출규제, 국제유가 상승 등의 원인으로 지난해 이스타의 재무상태가 더 나빠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스타항공이 완전자본잠식(자본 전액잠식) 상태에 빠졌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인수 금액이 애초보다 낮아진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방증하고 있다. 이번 매매금액은 지난해 12월 인수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때 합의했던 인수 금액 695억원보다 150억원 낮다.
강화된 항공사업법…변수 등장
최근 개정된 항공사업법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로부터 사업개선명령을 받은 뒤 2년 이내에 자본잠식률 50%이상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면 항공운송사업자 면허가 취소된다. 현재대로라면 이스타항공이 이 경우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는게 업계 중론이다. 따라서 제주항공 입장에서는 긴급수혈을 통해 국토부의 사업개선명령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스타에 수백억원 규모의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타항공이 비상장사인 탓에 재무 정보가 공개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상태는 알기 힘들지만 이번에 매매가가 내려간 점 등으로 볼 때 최대 1000억원 가량의 신규 자금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제주항공의 상황도 녹록지않다. 작년 말 연결기준 현금성자산은 1500억원 정도로 알려졌는데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불황을 버티기에 넉넉한 수준이 아니다.
제주항공은 2011년부터 매년 두자릿수 성장세를 이어왔지만 지난해 영업손실 348억원을 기록하며 처음 적자로 돌아선 상태다.
이렇다보니 이스타의 인수에 있어서도 막판까지 고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1월 중에 이스타항공 최대 주주인 이스타홀딩스와 주식매매계약(SPA) 체결할 계획이었으나 지연돼 이번에 인수가 성사됐다는 점에서다. 업계에서 인수 불발설이 돌 정도로 제주항공은 신중했다.
더구나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황에 대비해 현금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런 여러 상황으로 볼때 이스타에 신규자금을 투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애경그룹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애경 또한 실탄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에서다. 실례로 작년 하반기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 애경그룹은 부족한 자금 때문에 스톤브릿지캐피탈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했다.
현재 애경그룹은 정부의 LCC업계 금융지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CNB에 “아직 이스타항공 지원에 대해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 우선 산업은행의 LCC들에 대한 금융지원의 내용과 규모 등이 결정된 후에 검토할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전세계 하늘길 막혀…피해 눈덩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항공업 업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점도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한국항공업계에 따르면 2월 넷째 주 국제선 여객 수는 65만2626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8% 줄었다. 중국 노선 여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85.2% 감소했으며 일본과 동남아는 각각 70.6%, 62.1% 줄었다. 미주와 유럽도 전년 동기 대비 11.8%, 29.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달 들어서는 사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9일 오후 6시 기준 한국으로부터의 외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격리 등 입국절차를 강화한 곳은 총 106개 국가에 이른다.
전세계 대부분의 하늘길이 끊긴 데다 남은 노선도 여객 수요가 급감하고 있어, 오는 6월까지 항공업계 매출피해는 5조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항공사들은 직원의 휴직과 월급 삭감 등 비상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전직원을 대상으로 이달에 10일간 무급 휴직한다. 따라서 전 직원의 3월 급여는 일괄적으로 33% 삭감되며, 조직장급 이상은 급여를 자진 반납하기로 했다. LCC들도 1개월 이상 무급휴직에 들어가거나 급여를 대폭 삭감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CNB에 “애경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결정할 때 적자 규모, 결손금 등 재무상태를 충분히 실사해 매매금액을 정했을 것”이라면서도 “당시에는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애경그룹의 긴급자금 지원이 없다면 이스타는 물론 제주항공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