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를 보면 가장 큰 사회악으로 꼽히는 것은 ‘리베이트’다. 이에 대한 이견을 제시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리베이트가 과연 사회악이기만 했을지는 좀 더 깊이 봐야한다.
우선 왜 생겨났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질적으로 건강보험이 원인이다. 건보가 적용되는 의약품은 가격을 정부가 책정한다고 할 수 있어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의약품들은 가격 경쟁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고, 의사나 환자들이 의약품을 선택하는데 있어 약가는 고려 요소가 되기 어렵다. 물론 오리지널과 제네릭 사이에 약가 차이가 다소 있지만 환자가 크게 부담된다고 느낄 만큼 큰 차이는 아니다. 약가 자체가 꽤 저렴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약품들은 리베이트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가격경쟁 요소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약사들은 약가를 저렴하게 받아 경쟁하기 보다는 무조건 높은 약가를 받으려 한다. 어차피 약가가 판매량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비싸게 파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제약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된다. 결국 제약사들은 리베이트를 통해 의사들의 처방에 ‘영향’을 주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베이트는 어떤 피해를 줄까. 환자는 피해자라고 딱 잘라서 이야기하기 어렵다. 환자가 피해를 봤다고 하려면 물적 손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약가는 고정이다.
리베이트 받은 의사가 질 낮은 제네릭을 처방함으로서 환자가 피해를 입는다고 할 수도 있으나, 이 부분도 미묘하다. 의약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입장은 “오리지널과 제네릭의 품질은 동일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리베이트 때문에 질 낮은 제네릭들이 처방된다면 식약처에서 나서서 해당 제품을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리베이트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은 나온다. 특히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건보 재정에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한다. 약가에 리베이트 비용이 추가, 결국 건보 재정에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약가는 고정이다. 리베이트를 주었다고 해서 약가가 오르지는 않는다. 이제까지 약가 협상을 하면서 원가 책정을 할 때 리베이트 비용을 고려했다는 이야기는 나온 적이 없다.
과잉처방을 유도했다는 지적은 나올 수 있다. 굳이 처방 안해도 되는 약들을 리베이트 받고 환자들에게 사도록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약 처방 비중은 매우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꼭 리베이트 때문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기본적으로 환자들이 빠른 약효를 기대하는데다, 약가가 저렴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약을 처방 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실제로 의사들 사이에서는 ‘약을 독하게 써야 명의 소리를 듣는다’는 푸념이 적지 않게 나온다.
굳이 피해자를 꼽자면 오리지널 제품을 생산하는 제약사들이다. 많은 R&D(연구개발) 비용을 들여 제품을 개발했는데, 큰 돈 안들이고 만들어진 제네릭 제품들이 리베이트를 통해 팔려 나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는 공정거래 문제지,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리베이트는 사회악’이라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을까. 사실 이같은 주장은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넓혀 가는 과정에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즉, 리베이트를 막으면 그만큼 약가를 더 깎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다.
실제로 리베이트에 대한 가장 강한 제제인 ‘리베이트 쌍벌죄’(2010년 입법)는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 시행(2012년 일괄약가인하 시행) 움직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먼저 약가 인하의 요인을 만들고 거기에 맞추는 식이다.
그렇다면 리베이트는 과연 악영향만 미쳤을까. 사실 그렇지 않다. 비싼 오리지널 약의 처방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오리지널 의약품 개발이 미흡하던 산업 초창기에 리베이트가 없었다면 국내 제약업계는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과감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제약사들이 직접 뿌리는 리베이트를 제외하면 국산 의약품 처방 유인 요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국내 제약사들이 성장하지 못했다면, 오리지널 약의 약가인하 요인이 없어지기 때문에 오늘날 환자들은 비싼 약만 사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리베이트를 뿌리며 커 온 국내 제약사들이 성장해서 제네릭을 다수 개발, 약가를 낮췄고, 신약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국내 제약업계가 리베이트가 없으면 약을 못 팔 만큼 예전처럼 허약하지는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약 부피를 줄이거나, 약효가 오래가게 하거나, 2~3개 먹어야 하는 약을 하나로 합치는 등 복용 편의성을 개선한 개량신약을 개발하기도 하고, 같은 기전이라도 더 우수한 효과를 내는 성분을 찾아 신약을 개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약가인하를 위해 제네릭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는 것처럼 리베이트를 완전히 없애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수한 국산 신약으로 수입산 오리지널 의약품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도 아직은 어렵다.
그렇다면 음성적 리베이트를 처벌하는 대신 리베이트 양성화를 정책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리베이트는 아니지만 의사들에게 경제적으로 이익을 줄 수 있는 ‘시판 후 임상’(4차 임상) 활성화 같은 정책이 대표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리베이트 외에 의사들의 처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제네릭이라고 해도 생산 시설의 수준에 따라 등급을 따로 매겨 소비자에게 알리는 등의 방법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제약산업은 단순히 산업 경쟁력만 보고 키워야 하는 분야가 아니다. 몇 년 전 신종플루 사태가 터졌을 때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가 부족해 난리가 났던 것처럼 국내 제약업계가 허약하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
리베이트 관련 문제의 근본을 보지 않고 그저 사회악 취급하며 ‘걸리면 걸리는 대로 죽인다’는 식의 정책이 아니라 대안을 모색해 봐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