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들이 온라인 의약품 유통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영업의 효율을 높이고, 안정적인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어서다. 이미 SK케미칼, 한미약품, 대웅제약, 보령제약, 일동제약 등 주요 제약사들이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했다. 그러나 활성화는 아직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CNB에서 그 속사정을 살펴보았다. (CNB = 이동근 기자)
온라인 직거래로 유통비용 줄었지만
수수료 잃게 된 도매업계 거센 반발
극한 대립에 온라인사업 제자리걸음
제약업계가 온라인 유통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지 벌써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활성화 됐다고 보기에는 멀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주요 고객이어야 할 약사들은 아직도 도매업자들과의 거래를 선호하는 곳들이 많다.
대부분의 유통 채널은 온라인이 활성화 돼 있지만, 의약품은 일반 인터넷 오픈 마켓에서 거래가 불가능해 전문적으로 의약품 유통을 하는 도매업자들이 주로 유통을 담당해 왔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제약사들은 직거래를 선호해 왔지만 규모가 작은 제약사는 인건비 등의 문제로 도매사를 통한 유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특히 리베이트를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를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죄’ 시행 이후인 2010년 초 중소 제약사들이 직거래 방식의 유통 방식을 중단하는 사례가 늘면서 도매 거래가 더욱 활성화 됐다.
이 당시부터 중견 제약사들은 대면 거래가 아닌 온라인 유통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교적 투명한 방식의 유통이 이뤄질 수 있는데다, 도매업체를 통해 나가는 수수료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직접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매업계 반격…마켓 무력화
현재 중견 제약사가 개설한 온라인 마켓은 대웅제약 ‘더샵’ (2009년 개설), SK케미컬 계열사 유비케어의 ‘유팜몰’ (2011년 개설), 한미약품 ‘HMP몰’(온라인팜, 2012년 개설), 보령제약 ‘팜스트리트’(2017년 개설), 일동제약 ‘일동샵’(2017년 개설) 등이 있다. JW중외제약도 온라인 마켓 개설을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마켓들은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자사제품을 유통하는 플랫폼에 그치고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켓에 올라온 타 제약사 제품들은 도매업자들이 입점하고 있는 것이고, 그 규모도 작은 편이다.
약사들도 온라인몰 외면
이같은 현상은 도매업체들과의 대립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2012년 한미약품과 대웅제약은 한국의약품도매협회(도협, 2014년 한국의약품유통협회로 개명)와 적지 않은 마찰을 빚었다.
도매협회가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소제약사들의 중견 제약사 쇼핑몰 입점이다.
소비자 입자에서 쇼핑몰마다 돌아다니면서 제품을 구입해야 한다면 불편하기 때문에 한 쇼핑몰에서 다양한 제품을 구입하길 원한다. 의약품 온라인 마켓 운영사들은 중소 제약사들의 입점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구비하길 원했다. 중소제약사들도 유통비용이 적은 직거래를 선호했다.
그러나 도매업체들 입장에서는 제약사들이 직거래로 나섬에 따르는 손해에 더해 고객인 중소제약사까지 빼앗기기 때문에 온라인 마켓 활성화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참고로 중소제약사들은 도매업체에 매출액의 약 10~12%를 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는데, 이는 상위 제약사(8~10%)나 글로벌 제약사(5~7%)보다 최고 2배에 달한다.
당시 도협 측은 비상대책위원회까지 만들고 “제약사의 온라인 쇼핑몰은 대기업이 제과점을 운영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지금(2012년 당시)은 약국도매에 한정돼있지만 병원도매, 즉 ETC 도매에까지 손을 뻗친다면 그 때에는 종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HMP몰 운영사인 온라인팜이 도협에 가입하는 것으로 한미약품 쪽의 대립은 일단락 됐고, 대웅제약 더샵도 타 제약사 입점 방침을 철회하고, 도매업계의 입장을 고려해 가격을 적정 수준에서 책정하는 것으로 대립을 해소했다.
하지만 도협의 반발은 끝나지 않았다. 도매업체들은 온라인 마켓이 언제든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할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실제로 한미약품과 도협 측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충돌 양상을 보였고, 2015년에는 의약품유통협회가 아예 ‘HMP몰 폐쇄’를 주장하며 한미약품을 압박하는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이밖에 약사들의 온라인 마켓 이용 저조 등도 문제로 지적된다. 나이가 많은 약사들은 온라인으로 회원 가입하고, 물품을 주문하는 것을 낯설어 하는데다, 쇼핑몰마다 한정돼 있어 한번에 모든 물품을 취급하는 도매상과 거래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추세 ‘역행’
하지만 언제까지 제약업계의 온라인 유통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 제약업계의 중론이다. 중견제약사들은 활성화된 온라인 유통망을 필요로 하고, 중소제약사들은 수수료 문제로 온라인 유통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젊은 약사들은 온라인 마켓 이용에 익숙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활성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법적으로도 온라인 유통, 직거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게다가 이미 세계적으로 온라인 의약품 유통은 대세가 돼 가고 있다.
예를 들어 시장조사 전문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2014년 107억3500만 달러(한화 약 12조1130억원)였던 미국 온라인 의약품 유통시장은 연평균 12%씩 성장, 오는 2021년에는 232억4400만 달러(한화 약 26조23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도 2016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온라인 의약품 유통망 구축에 나섰고, 인도는 2018년 온라인 의약품 유통을 위한 면허취득 절차를 간소화해 온라인 유통 활성화를 지원했다. 일본도 일반 소비자가 2017년부터 아마존재팬을 통해 전문의약품을 구매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중견 제약업체 관계자 A씨는 CNB에 “온라인 마켓에서 판매를 하면 마진이 크게 더 많이 남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벤트 등을 통해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짤 수 있다. 젊은 약사들의 사용이 늘고 있어 앞으로 더 활성화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중소 제약사 관계자 B씨는 “‘공동·위탁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공동 생동시험)’의 단계적 폐지가 확정된 상황에서 중소 제약사들은 마진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다. 온라인 유통도 해결책 중의 하나로 고려중인 것은 사실”며 “다만 도매업체들의 반발은 넘기 어려운 장벽”이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고혈압 치료제 원료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된 소위 ‘발사르탄 사태’가 지난해 발생하자 의약품 품질 관리 강화를 선언했고, 복제약(제네릭) 허가가 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앞으로 제약사들이 공동으로 생동성 시험을 하고, 위탁생산을 하는 것을 단계적으로 막겠다고 지난달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조치는 복제약을 통한 매출 비중이 높은 중소제약사들의 매출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CNB = 이동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