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살 빼는 약’이 주목받고 있다. ‘벨빅’이 2015년 출시 뒤 인기를 끌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더니 이듬해 출시된 ‘콘트라브’가 시장을 확대했다. 그리고 지난해 출시된 ‘삭센다’가 품귀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들 약물이 필요 이상으로 남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만치료제 열풍의 명과 암을 살펴보았다. (CNB=이동근 기자)
의사 대면 없이도…허술한 약처방
입 소문에 반짝했다가 사라지기도
과잉치료·불법광고 등 문제 드러나
우리나라에서 ‘살빼는 약’은 꾸준한 인기를 끌어 왔다. 그러다 2010년 리덕틸(시부트라민)이 심혈관계 부작용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된 뒤 이 시장은 ‘무주공산’ 상태가 됐다.
다른 비만치료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리덕틸 만큼 큰 효과가 있는 약은 드물었으며, 효과가 있다고 해도 부작용이 심각한 마약성 약물만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그러다 2015년 일동제약이 수입약 ‘벨빅’(로카세린)을 시장에 선보이면서 ‘살 빼는 약’ 시장은 활성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약은 마약성인 향정의약품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장기복용에도 문제가 없다는 내용으로 미국 식품의약처(FDA)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밸빅은 지난 2017년 약 115억원(시장 조사기관 유비스트 기준)의 매출을 올려 비만치료제 시장 매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비만치료제 전체 시장은 약 1000억원대로 추산된다.
이후 광동제약이 비향정성 비만치료제인 ‘콘트라브’을 국내에 도입하면서 리덕틸 퇴출 이후 비만치료제 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콘트라브는 도입 초기엔 인기가 다소 주춤했지만, 2017년 동아ST와 공동판매 계약을 맺으면서 조금씩이지만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비만치료제 시장을 가일층 성장시킨 제품이 지난해 3월 출시된 노보노디스크의 ‘삭센다’(리라글루티드)다. ‘삭센다’는 출시 이후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한때 품절 사태가 벌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삭센다의 등장으로 비만치료제 시장의 어두운 면도 조금씩 부각되기 시작했다. 불법 거래, 환자 요구에 따른 과잉진료 등 삭센다와 관련한 각종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삭센다'요? 의사 얼굴 안 봐도 처방”
“그냥 아는 사람 통해서 병원에서 샀어요. 의사요? 얼굴도 못 봤어요.”
기자 K씨(31세·여)는 지난해 말 비만치료제 ‘삭센다’ 처방을 받은 과정을 물으니 이같이 답했다. 과체중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 다이어트에는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병원에서 일하는 ‘아는 사람’을 통해 구매했다.
그녀의 구매 과정은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로 의사의 대면 없이 처방이 이뤄졌다. 이는 불법이다.
두 번째, 처방이 허가범위 밖에서 이뤄졌다. 삭센다는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키 165㎝인 경우 체중 82㎏ 이상)인 비만 환자, 또는 이상혈당증과 같은 체중 관련 동반 질환이 있는 과체중 환자에게 처방하도록 허가받았다. 그녀의 체질량 지수는 30㎏/㎡보다는 훨씬 아래였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위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삭센다의 효과에 대한 관심만 많다. 외모가 경쟁력이고, 몸무게는 정상보다 낮을수록 자존감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 편하게 살을 빼 준다는 비만치료제에 대한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계에서는 이런 분위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연이어 나왔다. 일부 병·의원들이 삭센다 열풍을 타고 불법 광고 및 과잉처방을 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지난해 말 서울시 내 39개 성형외과·피부과 병원 등을 조사한 뒤, 의사 처방 없이 삭센다를 판매한 5개 병·의원, 삭센다를 불법 광고한 19개 병·의원 등을 적발했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10월, 대한의사협회장, 대한병원협회장, 대한약사회장, 한국병원약사회장 등에게 ‘허가된 적응증 내에 사용할 것’ 등의 내용을 담은 ‘삭센다펜주 관련 주의사항’ 공문을 발송했다.
이어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는 올해 초 회원들을 대상으로 ‘삭센다펜 주의 오남용 예방 및 안전한 사용을 위한 지침’을 전파했다. 이 지침은 첫 주사는 의료기관 내에서 시행하고, 환자 교육을 강화하며, 주기적으로 환자 대면 진료를 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의협 박종혁 대변인은 “국민들의 의약품 오남용 예방 및 온라인 불법 유통 등의 문제를 사전에 차단해 국민들이 안전하게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회원들에게 취급 관련 주의사항 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올해도 비만치료제 열풍은 이어질 전망이다. ‘외모지상주의’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정상 체중이라 해도 ‘쉽게 살을 뺄 수 있다’는 사실에 유혹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아서다.
하지만 비만치료제 대부분이 비급여(건강보험 미적용)로 처방이 이뤄지고 있어 유통이 관리되지 않아 불법광고 및 과잉처방에 대한 적발이 쉽지 않다는 것이 보건당국의 하소연이다. 결국 ‘약물을 통한 편한 살 빼기’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 개선을 위한 정부와 의료계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CNB=이동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