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족(꾸미기를 좋아하는 남자)이 급증하면서, 남성 화장품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것에 관심을 갖고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 이른바 ‘그루밍족’이 늘면서, 이들을 위한 화장품 시장도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로션과 스킨, 자외선차단제 정도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색조부터 마스카라까지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제품까지 라인업이 확장되고 있다. 반면 지나친 상업주의·외모지상주의가 낳은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CNB=김유림 기자)
“몸이 달라지면 세계가 달라져”
메이크업은 기본, 색조화장 대세
“지나친 외모지상주의” 비판도
“유튜브에서 화장 팁을 알려주는 영상을 보는데 웬 희한한 여성이 나오더라고요. 근데 알고보니 코미디언 김기수였어요. 속눈썹, 아이라이너, 네일까지 저보다 관리를 더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댄서킴으로 유명한 개그맨 김기수가 진행하는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를 시청한 20대 여성이 남긴 후기다.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해 화장법을 알려주고 있는 개그맨 김기수. (사진=MBC캡처)
뷰티와 패션은 더 이상 여성들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다. 남자도 예뻐지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시대이며, 이들을 ‘그루밍족’이라 부르고 있다. 그루밍의 본래 의미는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시켜 말끔하게 꾸민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단장하는 남성들의 행위를 뜻한다.
그루밍족은 화장품을 넘어 패션과 악세서리, 치아 관리, 눈썹 문신은 물론 성형수술까지 마다치 않는다. 한 달에 서너 번은 미용실을 찾고, 본인의 피부 타입에 맞는 클렌징폼을 고르기 위해 화장품 코너에서 상담을 받는다. 세안 후에는 아이크림까지 꼼꼼히 챙겨 바르고, 피부에 좋지 않은 담배와 술 대신 마사지를 즐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은 지난해 약 1조 2936억원을 기록했다. 10년간 거의 10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이는 전세계 남성 화장품 판매액의 20% 규모다. 우리나라 다음으로 남성화장품이 많이 팔리는 덴마크와도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한국 남자가 전세계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로 화장품에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아모레퍼시픽의 아이오페(IOPE)에서 판매하고 있는 남성용 쿠션 ‘아이오페 맨 에어쿠션’. (사진=아모레퍼시픽)
남심 저격 나선 뷰티업계
이처럼 그루밍족의 시장이 눈에 띌만한 수치를 기록하면서, 뷰티 업계의 경쟁에도 속도가 붙었다.
지난 1일 아모레퍼시픽의 아이오페(IOPE)는 남성용 쿠션 ‘아이오페 맨 에어쿠션’을 리뉴얼 출시했다. 아이오페는 전 세계 최초로 쿠션을 개발한 곳이다. 쿠션은 선크림과 메이크업 베이스, 파운데이션, BB크림 등 기초 메이크업 제품을 특수 스펀지 재질에 흡수시켜 콤팩트 형태로 담아낸 멀티 메이크업 제품이다.
개인별 화장 시간을 13초에서 7초로 절반 가량 단축시켰고, 메이크업 할 때 사용되는 제품수도 2.2개에서 1.7개로 줄어드는 등 여성들의 화장 습관을 ‘쿠션’ 전후로 나눌 정도로 혁신적인 아이템이다.
LG생활건강은 올해 3월 기존에 있던 남성화장품 브랜드 ‘보닌’을 통해 20~30세대를 겨냥한 ‘보닌 얼티밋 파이터’를 새롭게 선보였다. 피부관리를 하고 싶지만 유분감이 있고 답답한 느낌이 부담스러운 남자들에게 특화된 제품이다.
또 앞서 지난해 5월 신규 남성 발효허브 스킨케어 브랜드 ‘젠톨로지’를 론칭했다. 토너, 크림, 클렌징 등 일반 스킨케어 영역뿐만 아니라 헤어, 바디케어 등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걸친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선보였다.
▲지난 2011년 9월 당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한나라당 대표를 맡으면서 스트레스 때문에 눈썹이 빠지자, 성형외과 의사인 친구에게 눈썬 문신시술을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눈썹관리를 받는 남성 고객이 늘면서, 인기 외국 화장품 브랜드 ‘베네피트’에서는 눈썹 모양을 스타일링 해주는 ‘브로우 바’를 확장하는 리뉴얼을 진행하고 있다. 올 하반기까지 전점으로 확대할 예정이며, 남성용 ‘아이브로우’ 등의 색조 신제품도 선보일 계획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초보 그루밍족이나 깔끔한 인상을 원하는 취업 준비생 및 직장인을 위한 ‘아프리카 버드 옴므 그루밍 스타터’를 판매한다. 그루밍 키트에는 미니 사이즈의 BB크림과 컨실러, 아이브로우, 립밤, 눈썹칼 등 5가지 제품과 함께 눈썹 메이크업 및 넥타이를 매는 법 등을 담은 가이드북도 들어있다.
미샤는 매끈하고 청결한 코를 원하는 남성들을 위한 코팩을 판매하고 있다. 일반 코팩에 비해 3분의 1정도 큰 ‘빅 사이즈’ 패치로 만들어, 코가 큰 남성들도 부족함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피부 청결에 도움을 주는 참숯 추출물과 피부 진정, 모공 수렴 효능이 뛰어난 성분이 함유된 것이 특징이다.
▲CJ올리브영 명동본점 그루밍존. (사진=CJ올리브네트웍스)
드럭스토어 업계 1위 CJ올리브영도 자체브랜드를 출시하며 그루밍족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2013년 남성 스킨케어 브랜드 ‘XTM스타일옴므’를 론칭한 데 이어 올 초 ‘보타닉힐 보 아이디얼 포 맨’ 브랜드를 새롭게 선보였다.
또 지난해 명동본점의 남성존(zone) 위치를 2층 구석에서 입구 쪽으로 이동했고, 연말 오픈 한 부산 광복본점에는 남성존을 강화했다. 혼자 온 남성들도 쉽고 전문적으로 쇼핑할 수 있도록 카테고리별로 상품을 구성했고 체험존도 꾸며 제품 사용법과 뷰티정보를 제공하면서 직접 제품을 테스트해볼 수 있게 했다.
남성성의 진화냐, 소멸이냐
유통업계도 멋에 눈뜬 남심 잡기에 나섰다. 신세계는 지난해 9월초 오픈 한 스타필드 하남에 남성들의 쇼핑공간을 조성해 이목을 끌었다. 모터사이클을 비롯한 의류,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할리데이비슨’, 리스본, 로마, 밀라노에 이어 아시아 최초로 ‘BMW 미니 시티 라운지’를, 하이엔드 자전거브랜드 총 집합소인 사이클링 카페 ‘와츠사이클링’을 입점시켰다.
▲뷰티&바버샵에서 이발을 하고 있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사진=정용진 부회장 SNS)
특히 이곳에 있는 뷰티&바버샵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직접 자신의 SNS에 머리손질을 받고 있는 본인 모습을 올려 화제가 된 곳이다. 산타마리아노벨라, 잭블랙 등 해외 유명 브랜드 남성 화장품 쇼핑이 가능하고, 1960~70년대 클래식한 영국의 바버샵 분위기 속에서 헤어스타일 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롯데백화점은 눈과 입술에 검은색과 붉은색을 덧입히는 남성들이 증가함에 따라 남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메이크업 제품을 선보이고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의 색조화장품 브랜드 매출 중 남성 고객 구성비는 지난 2012년 4%에서 2016년 11%로 약 7% 이상 상승했고, 색조화장품 구매 객단가 또한 5년 만에 15% 이상 높아졌다.
이러한 ‘그루밍족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호사가들은 남성성의 소멸, 남성의 여성화, 외모지상주의라는 지적을 내놓는다. 지나친 상업주의가 낳은 결과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아름다워지려는 인간의 본능을 획일화된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 그루밍족의 확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불황 속에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심을 잡기 위한 업계의 전쟁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