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이방인이 바라본 역사 아니요?”
어느 고령의 남성이 제주4.3사건을 다룬 여성 작가에게 던진 말이다.
그녀의 작업은 제주에서 태어나 해외로 입양된 작가가 고향에 되돌아와 자신의 역사와 갈래가 비슷한 더 큰 역사를 조사한 것이다. 어렸던 자신을 떠나보낸 고향이지만 그는 어느 누구를 탓하기보다 당시 시대상황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가 처한 공통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는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관련 자료들을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고 진지한 태도로 영상에 담았다.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작가는 매번 자료를 소화하기 위해 번역을 거쳐야 했지만 근래 누구보다 방대한 양의 조사를 수행했다. 해당 리서치는 영상설치 전시로 대중에게 공개됐고, 그녀의 작업에 궁금한 이들이 모여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열렸다. 해외에 체류 중인 작가를 대신해 그의 작업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국내의 조력자들이 자리에 참석해 그녀의 작업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대화 자리에 참석해 이야기를 경청하던 이 고령의 남성이 위의 질문을 던진 건 질의응답 시간이 찾아온 직후였다. 그는 “거, 작가가 너무 한 가지 면만 보는 것 아닙니까?”를 되풀이하며 이어 “제주 4.3은 여러 면을 갖고 있잖아요. 너무 부정적인 면만 부각한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불행이 있으면 즐거움도 있잖소. 제주를 이해하는 데 4.3을 들먹이는 것은 너무 큰 부작용이 있지 않겠어요?”
이후 길게 이어진 그의 핀잔과 문제제기의 핵심은 ‘이방인이 바라본 4.3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였다. 그에게 해외로 입양된 여성 작가는 이방인이었고, 이방인이 아픈 역사를 부각하는 이유는 일부 미디어가 희생자 입장에서 해석한 일을 비판 없이 맹신했기 때문이라고 치부했다. 남성은 아마도 희생자들의 입장이 많이 반영된 영상에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작가를 대신해 작가의 작업을 설명한 두 명의 연사들은 각각 다른 측면에서 작가를 대변했다. 한 학자는 그의 번역작업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설명했고, 다른 미술관 관장은 제주도민인 자신보다 이 작가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강조했다. 제주도민들조차 4.3사건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말할 수 있게 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누가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광복 71주년을 맞은 오늘 온라인에서는 새삼 미국인 타일러가 과거 광복절을 맞아 SNS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그가 생각하는 광복절의 의미를 설명한 글이다. 부분 발췌를 하면 이렇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지만,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하나의 개인으로서 나에게도 광복절이 그런 것 같다.
같은 겨레도 아니고 같은 국적도 아니지만 나와 같은 외국인을 포함해서 이 땅에서 숨 쉬고 생활하고 있는 만인, 한글을 좋아하는 사람, 한국말을 배우고 있거나 일상에서 쓰는 사람, 한국의 어떤 것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 한국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고 그 인연을 간직하는 모든 이들에게 광복절은 그런 것 같다.
즐기고 즐기다가 어느덧 당연하게 여기게 된, 너무나 귀한 한국의 모든 것들을 다시 고맙게 여기고 간직하게 해 주는 자유. 한국 어딘가에서 발을 처음 딛고 있는 외국인, 해외에서 한국을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동포, 모든 이들에게 광복절은 그런 날이 아닐까?"
해당 질문을 던진 남성을 ‘맨스플레인’(mansplain: 남성(man)+설명하다(explain)의 신조어로, 주로 ‘꼰대질’을 의미한다)으로 치부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광복절과 관련한 구설수로 포털 순위에 오르내리는 두 한국인을 바라보며 불현듯 이 남성이 떠올랐다. 자신의 이익에 맞춰 자의적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자국민의 견해보다는 (이 남성의 기준으로 볼 때의) 이방인의 역사의식에 더 귀 기울일 가치가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