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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파괴된 홍익대 일베 조각상, 그리고 반달리즘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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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윤하나기자 |  2016.06.01 15:57:41

▲6월 1일 새벽 2시 경 파손된 논란의 일베 조각상. (사진 = 연합뉴스)


30일 작품 설치부터 논란이 이어져 온 홍익대학교 조소과 학생의 일베(일간베스트) 조각상이 결국 훼손되며 철거됐다. 해당 조각상은 지난 530일 밤 작품이 설치되는 순간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결국 하루만인 61일 새벽 신원을 숨기지 않겠다는 학생에 의해 파손되며 게시대를 내려왔다. 작품의 공개부터 파괴까지 48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일베 조각상을 둘러싼 공방전


이 조각상은 설치 초기부터 특히 홍대 학생들의 큰 공분을 샀다. 처음엔 작품을 만든 학생이 '일베 인증을 한 것이냐'로 시끄러웠고, 학생의 인터뷰가 보도된 뒤엔 왜 하필 정문 앞(홍문관)에 설치한 것인지에 분노했다. 분노하는 학생들의 입장은 대개 조각상의 설치 위치를 문제로 지적했다. 홍대생이 아닌 외부인들도 자유롭게 지나는 정문 앞에 일베의 상징 손가락 조각상이 설치돼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주장이다.

 

이들 대부분은 학교 정문에 설치된 일베 손동작이 마치 학교의 상징물처럼 보일 것을 우려했다. 실제로 이 조각상 앞에서 일베 손가락 모양을 따라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중국 관광객들의 모습이 31일 보도되기도 했. 이처럼 설치 위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창작의 자유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가 아직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31일 아침까지 인터넷을 중심으로 일베 인증인가’ ‘개막 퍼포먼스로 일베 조각상을 부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시험 문제를 낸 일베 논란을 빚은 류병운 홍대 법대 교수의 교수 임용을 비판하는 작업이다’ 등 다양한 추측이 인터넷에서 빠르게 전파됐다일베 교수 임용 문제 등으로 논의가 생산적으로 진행될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여기에 작품을 제작·설치한 홍대 조소과 4학년 홍 아무개(22) 씨는 논란의 중심에서 31일 한 뉴스 매체를 통해 작품의 의도와 논란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에 따르면 작품의 제목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처럼 사회에 만연하지만 실체가 없는 일베를 형상화하고 이를 통해 논란의 촉발을 의도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소문이 돈 퍼포먼스 또는 교수 임용 문제에 대한 시비는 전혀 내 의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작가의 의도는 현실에서 어느 정도 실현됐다. 주로 인터넷 기사의 댓글창과 SNS, 홍대생들의 커뮤니티와 캠퍼스에선 해당 작품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그리고 공격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인터뷰 이후 여론의 비난 강도는 더욱 거세졌고, 결국 그날 밤 누군가에 의해 조각상은 파괴됐다. 

 

▲일베 조각상은 파손되기 전까지 다양한 의견이 담긴 포스트잇과 계란 판매대에 둘러싸여 있었다. (사진 = 윤하나 기자)

 

비판할 자유 포기시키는 반달리즘


31일 오전 취재진이 홍대에 방문해 발견한 일베 조각상은 이미 훼손 진행 중이었다. 토마토를 연상시키는 음료수와 계란에 맞아 곳곳에 누렇고 빨간 흔적이 보였다. 조각상 좌대엔 미시오표지판과 각종 항의의 뜻을 담은 포스트잇이 붙었고, 옆 켠엔 계란 판매 무인함도 설치돼 있었다. 작품을 밀고 계란을 던지고 의견을 말하라는 '적극적인 행동의 발로'로 격렬한 논의가 일어나는 현장이 됐다.

 

포스트잇에는 히틀러 동상 세워두고 파시즘 존재한다 같은 소리 하네”, “작가 존중, 관람자 존중, 저는 중립” “그렇게 표현하고 싶음 개인전 하시길! 학교는 모두의 것” “작품 성공등 작품을 향한 다양한 입장이 적극적으로 표현됐고,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렇듯 작가의 창작의 자유와 관람객의 표현의 자유는 공존할 수 있다. 서로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자유가 있고, 존중받을 권리도 있다. 상대의 의견에 늘 동조하고 존중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표현의사를 강제로 막거나 제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에 반해 조각상을 파괴한 일은 예술품 또는 문화유산을 파괴·훼손하는 행위인 반달리즘(Vandalism)으로, 주로 무지에 의한 분노로 일어난다. (단, 반달리즘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예술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작가도 물론 존재한다) 

 

이번 사건을 프랑스의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 및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히틀러 조각상 사건과 연결해 보는 의견도 있다. 언론사 샤를리 엡도는 이슬람 풍자 만평을 그렸다는 이유로 테러의 대상이 돼 14명이 사망했다. 또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히틀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의 동상을 만들어 히틀러와 로마 카톨릭교의 결탁을 조롱했고, 이후 재판에까지 넘겨졌다.

 

약자혐오 및 극우편향의 인터넷 사이트 일베의 상징을 그대로 형상화한 이 작품을 샤를리 엡도나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풍자 작업과 동일선상에 둘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작품이 공개된 이후부터 각종 논란을 생성시키며 일베와 창작의 자유에 대해 발언하도록 만들었다. 작품에 대한 논의가 비난과 항의 표시 수준에서 마무리됐다면 학생 작품의 표현방법과 도발성에 대해 추후 논의가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지만 비난은 점점 고조됐고 분을 못 이긴 누군가의 폭력에 의해 파괴됐다. 졸업 준비생이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이 조각상은 그들이 지탄한 일베의 폭력성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폭력성에 의해 끌려 내려왔다. 이로 인해 학생은 작업에 관한 발전적 논의 기회를 잃게 됐고, 대중은 비판의 자유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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