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온돌문화다. 불을 지펴 방을 데우는 구조다. 예부터 땔감은 나무였다. 산에 나무가 무성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광복과 한국전쟁의 혼란기 때 산림이 더욱 파괴됐다. 동네 어귀의 산은 민둥산으로 변했다. 비가 오면 홍수가 나고, 토사가 휩쓸려 나갔다. 농경지도 위협받았다.
산림녹화가 절대적으로 요청됐다. 1950년대부터 국민이 푸른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산의 주인과 동네 사람이 산림계(山林契)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전통은 1970년대 조림사업으로 성장했다. 산림청이 내무부에 속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정부는 산림녹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검목(檢木) 제도를 만들었다. 나무를 계획대로 심고, 제대로 활착했는지 일정 시간이 지나 확인하는 제도였다.
정부는 4월5일을 나무 심는 식목일로 정했다. 이날은 24절기 중 청명(淸明)이다. 조선의 성종이 세자와 밭을 간 날이고, 순종이 나무를 심은 날이다. 정부는 수십 년에 걸쳐 4월에 집중적으로 나무 심기를 행정 지도했다. 임산물 단속에 관한 법률, 산림법, 조림녹화사업, 사방사업, 치산녹화 10년 계획 등을 줄기차게 세우고 시행했다.
그 결과 헐벗은 민둥산은 숲이 우거지게 됐다. 산의 짐승도 개체수가 늘어났다. 산림녹화의 숨은 공로자중에는 예전 내무부 소속 공무원들이 있다. 산림녹화사업 현장에서 20년 가깝게 근무한 퇴직 공무원 K씨가 내원했다. 60대 후반인 그는 머리카락이 거의 없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난 K씨는 웃으면 말한다. “제가 산림녹화에는 성공했는데, 두피숲 조성에는 실패했습니다.” 젊은 날, 산림녹화를 위해 뛴 뒤 퇴직하니까 자신의 두피가 민둥산이 되었다는 조크다.
그는 직업 언어를 살린 문의를 했다. “사방공사 때 검목 제도를 했습니다. 병원의 탈모치료도 검목제도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검모(檢毛) 제도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 약속한 대로 모발이 회복되지 않으면 환불해 드립니다.” K씨는 필자의 답변이 마음에 들은 듯했다. 바로 치료를 결정했다.
그러나 K씨의 치료는 쉽지 않았다. 60대 후반의 연령에, 탈모가 된 지 30년 가까웠다. 다행히 일부 모낭이 건강했다. 건강한 모낭에서 모근을 싹 틔워 드넓은 민둥산에 숲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젊은 날처럼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의 두피에는 제법 모발이 무성해졌다. K씨의 치료가 끝난 뒤 술잔을 앞에 두고 마주했다. 취기가 오르자 K씨는 말한다. "산에 나무가 많으니까 마음이 푸근합니다. 또 보기도 좋아요. 두상에도 머리카락이 솟아나니까 젊어지는 기분입니다."
필자도 거들었다. "선생님은 처음 병원에서 오셨을 때보다 10년은 젊어졌어요. 주위에서 이런 말씀 많이 듣죠."
글쓴이 홍성재 의학박사/웅선클리닉 원장
의학 칼럼리스트로 건강 상식을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살가움과 정겨움이 넘치는 글로 소개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 ‘탈모 14번이면 치료된다’ ‘진시황도 웃게 할 100세 건강비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