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술계의 적지 않은 기관들이 한꺼번에 65명의 '연수단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깐, 연수단원이란 말이 낯설다. 원래 악단, 극단, 무용단 등 음악 및 공연 단체의 일원 혹은 직원을 이르는 말 '단원'에 '연수'를 붙였다. 한마디로, 인턴이다. 시각 예술 기관의 인턴은 대개 큐레이터, 학예사 및 예술 행정가가 되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다.
정부는 매년 음악, 전통예술 및 공연 기관에 연수단원 사업을 지원해왔는데 올해부터 시각예술 기관이 여기에 포함되면서 연수단원이란 명칭을 함께 쓰게 된 것이다. 미술계에서 공공연히 써오던 인턴이란 말 대신 쓰이기에 어감이 제법 훌륭하다. 미술계의 인턴이 자동 연상시키는 최저 임금과 ‘열정 페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연수단원이란 단어에는 아직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앞장서 뽑는 11개월짜리 인턴들
최근 보도된대로, 모 미술 기관의 인턴 하루 임금이 2만 원이라는 뉴스, 식대만 제공하는 무급 인턴을 유지하는서울의 대형 미술관, '20대 용모 단정한 계약직' 큐레이터만 골라 모집한다는 수많은 갤러리 등의 사례에서 미술 취업 시장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청년 과도기 노동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청년 과도기 노동자란 어려운 말은, 그냥 통칭어로 바꾸면 '비정규직 노동자'(실습, 인턴, 수습 등)가 된다.
미술계의 창작자, 행정가, 전시 기획자 등 인력의 대부분이 초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이는 기관이 자체적으로 수익을 만들지 못하는 구조적 어려움과, 고질적으로 자행되는 노동력 저평가로 인해 저임금 평준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음악·연예계처럼 미술계도 특수한 인력 시장으로서, 신규 진입의 어려움 역시 또 다른 이유다.
자, 그럼 앞서 언급한 연수단원 지원 사업에 대해 알아보자. 사업의 취지는 문화예술 분야 전공 졸업자에게 사회 진출의 기회를 주고 이들의 초저임금 문제를 방지하기 위함이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2016년도 문화예술기관 연수단원 지원 사업’ 공모에 선정된 총 63개 시각예술 기관이 각 1명씩 연수단원을 모집한다(단, 두 기관은 2명씩 배정받았다).
이 사업으로 각 연수단원 1명은 세전 월급 130만 원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으면서 해당 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단, 대부분의 인턴과 마찬가지로 근무 기간은 11개월 한정이며, 만 35세로 나이도 제한된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12개월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줘야 하고, 24개월 이상 근무시키면 상시근로자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11개월만 기회 주고 "책임 다했다"?
좋은 취지의 사업일지 모르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미봉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자생력 없는 미술 기관의 고용 능력을 정부가, 그것도 신입 인력들만 집중해 임금을 대신 지불해주는 방식이라면, 현재 자행되는 신진 작가를 위한 공모전 및 레지던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초기 진입 인력에게 제공되는 일회성 기회는 사실상 장기적 효력이 떨어진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다.
순수예술 창작자들의 사례를 보라. 매해 신진 작가 발굴이나 실험성을 위한 창작비용 지원 등의 제도는 늘어난다. 하지만 그렇게 부양된 등단 작가들이 과연 활발히 활동하며 소비되고 있나? 등단 기회를 얻고, 지명도를 쌓은 개인은 있지만 그 이상의 큰 순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턴 제도의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인턴 기회를 통해 운 좋게 능력(인턴 직무에서 어떤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을 인정받아 정식 직원 채용이란 꿈을 꿀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의 정상적 순환고리가 끊어진 상황에서, 1년도 안 되는 인턴 기간만으로는 자칫 취업 시장에서 쳇바퀴만 돌기 쉽다.
작금의 청년 고용 문제에서 인턴 제도는 결코 유일한 해답이 아니다. 인턴 활동 이후의 일자리에 접근하도록 돕는 고용법 개정, 그리고 미술 시장이 자생력을 갖도록 하는 장기적 해법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