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가스 조작’ 폭스바겐 파격세일 대성공
‘환경·공해 문제’ 뒷전… 리콜 잘될지 의문
‘나 하나쯤’ 이기심에 안일한 환경부 합작품
4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11월 4517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기존 1, 2위를 다투던 BMW(4217대), 메르세데스-벤츠(3441대) 마저 넘어선 수입차 판매 1위에 해당하는 성적표다.
특히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태가 한창이던 전달 판매량(947대)과 비교하면 5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는 올해 1~10월 폭스바겐 월평균 판매량(2862대)을 압도적으로 초월한 월간 최고 실적이다.
반면 미국은 폭스바겐의 11월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24.7%나 줄었다. 지난 9월에 터진 배출가스 조작 논란으로 기업이미지가 추락하며 세계시장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현대·기아차 등 국산차보다 폭스바겐 판매량이 급증한 이유는 뭘까? 배경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파격적인 세일 정책이 먹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소비자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최대 60개월 무이자, 최대 1722만 원 현금 할인 등의 할인 프로모션으로 잠재웠다는 것.
폭스바겐은 10월 판매 대수가 1000대 이하로 떨어지는 비상사태에 직면하자 곧바로 다음 달에 주요 모델을 대상으로 특별 무이자 할부, 파격적 현금 할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또한 폭스바겐 파이낸셜 서비스를 이용해 신차를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폭스바겐 무상보증 기간을 기존 3년에서 2년을 추가로 연장해주고, 폭스바겐 차량 보유 고객들이 폭스바겐 신차를 구매할 경우에는 70만 원을 지원하는 특별 혜택을 줬다.
이 때문에 국내 완성차 업계의 중대형 차량이나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수입차를 사려고 했던 고객들이 대거 갈아탄 것으로 알려진다.
환경부의 폭스바겐 차량 조사 결과도 판매량 급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환경부는 지난달 26일 국내에 판매된 폭스바겐 경유차 6개 차종을 조사한 결과 EA189엔진(구형엔진)이 장착된 차량에서는 도로주행 중 배출가스재순환장치를 고의로 작동 중단시키는 임의설정을 한 것이 확인됐지만, 후속 모델인 EA288엔진(신형엔진)이 장착된 차량에서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조작이 적발된 폭스바겐과 아우디 구형엔진 차량 중 아직 판매되지 않은 차량은 판매정지, 이미 판매된 차량 12만5522대는 전량 리콜 명령을 내렸다. 이와 함께 폭스바겐코리아에 대해서는 인증 받은 내용과 다르게 차량을 제작한 사실을 확인해 15개 차종에 대해 총 14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신형엔진 차량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환경부가 확인해 준 셈이 됐다. 또한 ‘인증 사기’에 대한 검찰 고발 등 강력한 후속 조치도 하지 않아 소비자들에게 폭스바겐 신형차량은 별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는 미국연방검찰, 이탈리아 검찰, 프랑스 경찰 등이 폭스바겐 현지법인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에 나선 것과 비교된다.
실제로 환경부가 리콜을 명령한 폭스바겐과 아우디 차량의 소유주들이 이르면 내년 초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리콜에 순순히 응할지도 의문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리콜대상 차량이 공해 문제만 유발할 뿐 성능에는 지장이 없는 상황에서, 리콜로 인해 본인이 타던 차량의 출력, 연비 등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폭스바겐 본사가 출력이나 연비 손상 없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및 추가 장치를 달아 리콜 할 것이라고 밝혔음에도, 이미 폭스바겐에 속은 소비자들의 의구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차주들에 대한 보상책이 전무한 상황에서 리콜에 응하라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폭스바겐그룹은 미국 등 북미 고객에게는 1인당 1000달러(한화 약 116만원) 상당의 상품권과 바우처를 주기로 했지만, 국내 고객들에 대한 보상안은 발표하지 않았다.
법무법인 바른이 최근 폭스바겐 조작 사건과 관련해 집단소송을 제기한 국내 고객에게도 북미 피해자들과 같은 보상을 제공하라고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에 대해 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보상’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아직 이른감이 있다”며 “미국의 경우에도 지난 9월 미국 환경청의 발표가 나온 이후 보상 지원책은 한 달 반이 지나서 나왔다. 한국도 동일한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부, 국토부, 독일 본사와 긴밀한 논의를 통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CNB=허주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