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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박정희 정권 때 ‘5·16왜곡’, 유신 이전부터 있었다

1974년 첫 국정교과서 발행…이전 교과서들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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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허주열기자 |  2015.10.20 11:11:55

▲1974년 첫 국정화 이전에 발행된 국사 교과서 중 박정희 정권에 대한 서술이 있는 5종(왼쪽부터 교학사, 광명출판사, 동아출판사, 실학사, 장왕사)의 교과서.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교과서 체제로의 회귀를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 박정희 정권의 첫 교과서 국정화가 이뤄진 1974년 이전의 역사 교과서들 또한 한결같이 5·16을 미화·왜곡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국정교과서를 발행한 것은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정당하지 못한 권력을 미화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국정제 전환 이후 국사 교과서에는 5·16을 ‘혁명’으로, 유신(1972년 10월)은 ‘민족중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CNB가 국정화 이전 교과서들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5·16 등 중요한 역사인식이 국정화 이후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박정희 정권이 국정교과서 채택을 서둘렀던 이유는 뭘까? (CNB=허주열 기자)
 
박정희 시대, 검정·국정제 차이 없어
검정제서도 ‘5·16혁명’ 등 정권 미화
‘5·16왜곡’의 진짜 목적은 ‘종신집권’

 

#1. “4·19의거 이후 민주당 정권이 강력한 행정력을 행사하지 못해 사회의 혼란이 극심한 가운데 불순분자들이 농간할 틈까지 엿보였다. 이에 육군 소장 박정희를 비롯한 청년 장교들이 1961년 5·16군사혁명을 일으켜 강력한 질서 회복에 임하는 한편 민생고의 해결, 반공 정책의 강화 등을 다짐하고 군정을 실시했다.”(1967년 장왕사 발행 인문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2. “4·19의거 이후 사회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파벌 싸움으로 지내던 민주당 정부는 1년도 못되어 군사혁명을 당하였다. 1961년 5월16일 새벽에 박정희 장군이 지도하는 혁명군이 서울에 들어와, 혁명 공약을 발표함과 동시에 정부 각 기관을 장악한 후, 최고회의와 군사혁명정부를 조직하고 반공태세의 강화, 폭력배의 일소, 밀수품의 단속, 부정선거 원흉과 부정축재자의 처단, 농어촌의 고리채 정리 등 실로 과거에 보지 못하던 참신한 정치를 실시하였다.”(1978년 광명출판사 발행 인문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3. “민주당 정권이 집권한지 1년도 되지 않은 1961년 5월16일에는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혁명은 박정희 장군의 영도 아래 추진되어 전격적으로 무혈 혁명을 완성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정치·사회의 혼란을 수습하여 밝은 민주 정치의 터전을 마련하였다.”(1967년 동아출판사 발행 인문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CNB가 국립중앙도서관에 남아있는 1974년 이전에 발행된 교과서 10종 중 박정희 정권에 대한 서술이 있는 5종(장왕사, 광명출판사, 동아출판사, 교학사, 실학사)의 교과서를 직접 살펴본 결과 국정교과서 전환 이후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화 이전에도 불법으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화, 왜곡이 이뤄졌단 얘기다. 


▲1967년 동아출판사에서 발행한 인문계 고등학교용 국사 교과서의 5·16 관련 서술 부분.


그럼에도 왜 박정희 정권은 굳이 교과서를 개편했을까?

 

박정희 정권은 ‘민족 문화 창달’과 ‘국적 있는 교육’을 이유로 내세우며 당시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나온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틀어막는다”는 비판을 무시하고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국정화 작업에 본격 착수할 당시인 73년 6월 청와대 보고서에 따르면 “왜곡되고 타율적인 역사관은 시급히 청산돼야 한다”며 “민족중흥의 의욕에 충만한 후세국민을 길러낸다는 관점에서 볼 때 현행 국사교과서의 내용은 상당 부분의 개편이 필요한 바, 현재의 검정교과서 저자들이 개별적으로 이러한 개편작업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이듬해 국정화로 발행된 교과서에는 “1970년대 이후 정부는 민족 문화의 창달을 위해 국적 있는 교육을 내세우고, 전통문화의 보존 및 발전을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서술돼 있다.

 

▲1967년 장왕사에서 발행한 인문계 고등학교용 국사 교과서의 5·16 관련 서술 부분.


하지만 이는 대외적 명분용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대신 역사학계에서는 당시 교과서 개편이 유신헌법(1972년 10월 공포)이 발효된 직후인 1973년에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없애고, 권한을 대폭 강화해 종신집권이 가능하도록 길을 터줬다. 당시 행정부와 군부, 언론을 장악하고 있던 박정희 정권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검정교과서제도 보다 종신집권 기반 마련에 유리한 국정화를 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강종훈 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당시 유신체제 하에서 국정교과서로 정권 홍보를 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며 “그 당시 시대 분위기상 검정제 하에서도 교과서 통제가 가능했지만, 정부 지침이 그대로 반영되는 국정제가 (정권이) 원하는 대로 교과서를 만들기 더 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교과서 관련 사이트인 ‘우리역사넷’에도 박정희 시대 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해제(解題)에서 “교육의 본질적 목적보다는 정부 시책을 교육에 효율적으로 반영하려는 목적”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1968년 광명출판사에서 발행한 인문계 고등학교용 국사 교과서의 5·16 관련 서술 부분.


떼려야 뗄 수 없는 박정희·박근혜 정권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박근혜 정권이 학계, 시민단체, 야권 등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내세웠던 국정화와 명분은 비슷하지만 처한 상황은 전혀 다르다.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키 위해 국정화를 택했다면, 현재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는 아버지 시대를 다시 미화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역사교과서는 민주화를 거치며 5·16을 군사정변으로 표기하고 있다. 또 유신체제에 대해서는 3권 분립을 무력화시키고 권력을 대통령에게 집중시킨 사실상 영구집권 체제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5·16에 대한 평가는 법조계, 역사학계 등에서 ‘군사정변’으로 이미 정리가 끝난 상황이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는 ‘5·16군사혁명’이라는 구절이 삭제됐으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도 5·16은 군사정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나아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9월 교육부는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5·16혁명’을 ‘군사정변’으로 바꿔 사용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극찬한 보수단체의 대안교과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도 5·16은 쿠데타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권은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 검증을 통과해 현재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가 잘못됐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정화를 추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1968년 교학사에서 발행한 인문계 고등학교용 국사 교과서의 5·16 관련 서술 부분.


‘5·16’이 다시 ‘혁명’ 돼야 정통성 확보 

 

더 나아가 박근혜 정권이 아버지 시대의 정통성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명문화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5·16이 ‘혁명’이 돼야만 이후 유신체제도 독재가 아니라 나라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아버지의 후광이 상당부분 작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근혜 정권도 5·16의 연장선에서 나온 정권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박근혜 정권에 속한 인사들 대부분이 5·16에 대해 ‘혁명’이라 주장하거나, 아니면 관련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현재 추진 중인 국정교과서가 지향하는 5·16에 대한 평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일례로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국정교과서로 친일을 미화하고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을 미화할 생각 아니냐”는 백재현 의원의 질의에 “유신을 찬양하는 교과서는 나올 수 없다”면서도 5·16의 평가에 대한 답은 회피했다.

 

특히 황 총리는 “국정 교과서에 5·16을 ‘군사정변’이라고 쓸 것인가, ‘혁명’이라고 쓸 것인가”라는 구체적 질의에 대해서도 “교과서에 다양한 전문가 집필진을 활용해서 그 분들이 객관적인 사실에 맞는 표현들을 역사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1968년 실학사에서 발행한 인문계 고등학교용 국사 교과서의 5·16 관련 서술 부분.


이런 가운데 국내의 진영 논리에 영향을 받지 않는 외신들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화로의 회귀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BBC 등의 외신들은 박 대통령의 국정화 추진에 대해 각각 “박근혜 정권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교육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비판을 초래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낫게 만들려고 교과서를 다시 통제 하에 두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추진으로 학계와 야당의 격렬한 비판을 불렀다”고 보도했다.


한편 외국 교과서 사례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 중에서는 국정제를 택한 곳이 34개 회원국 중 3개 국(터키·그리스·아이슬란드)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 외에는 북한, 방글라데시 등 권위주의 정부나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만 국정제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호주,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미국은 검정제보다 더 자유로운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다.

(CNB=허주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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