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시동 꺼져도 ‘나 몰라라’ 배짱
BMW, 차량 결함으로 5만여 대 리콜
폭스바겐, 1100만대 배출가스 조작
지난 11일 A씨는 주행 중 시동 꺼짐 현상이 3차례나 반복됐는데도 차량을 교환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광주 서구 화정동 벤츠 판매점 진입로에서 리스로 구입한 시가 2억900만원 상당의 ‘벤츠 S63 AMG’ 차량을 골프채로 훼손했다.
그러자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딜러사는 며칠 뒤 A씨의 차량이 장시간 매장 입구를 막아 영업을 방해했다며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그를 고소했다.
해당 사건이 SNS와 언론을 통해 세간에 알려지며 파장이 커지자 벤츠코리아는 고소를 취하하는 한편 해당 차량을 신차로 교환해주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이미 벤츠의 이미지는 추락할 대로 추락한 뒤였다.
특히 벤츠 S63 AMG 모델 외에 다른 벤츠 차량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더 확대될 조짐이다.
B씨에 따르면 지난 18일 고속도로를 달리던 자신의 벤츠 CLA 클래스 차량 시동이 갑자기 꺼졌다. 다행히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9월 들어서만 시동이 꺼진 게 두 번째라는 게 B씨의 주장이다.
B씨는 즉각 본사에 차량 교환을 요구했지만, 벤츠 코리아 측으로부터 “한 번 더 시동이 꺼지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교환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시 한 번 더 고속도로 주행 중 시동이 꺼질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벤츠 측의 답변은 황당한 배짱 답변이다.
BMW는 최근 5시리즈와 미니 등 BMW코리아가 수입·판매한 25개 차종에서 엔진 작동 관련 장치 등에 결함이 발견돼 국토교통부가 5만5000여대를 리콜 할 것을 명령했다.
2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BMW 5시리즈, BMW 520d, 320d, X3 20d, 미니 등 24개 차종 5만5712대에 타이밍벨트 관련 장치의 기능이 원활하지 않아 주행 중 시동이 꺼질 가능성이 발견됐다.
또한 BMW 액티브 투어러 25대는 조수석 안전띠를 구성하는 내부 부품의 제작 불량으로 외부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 안전띠가 완전히 당겨지지 않을 수 있는 문제점이 발견됐다.
압권은 폭스바겐이다. 폭스바겐은 지난 18일 미국에서 배출가스 시스템을 조작한 사실이 미국 환경보호청(EPA) 조사 결과 드러났다. EPA는 1년이 넘는 걸친 장기간 조사 끝에 폭스바겐 골프·제타·파사트·비틀·아우디A3 등 5개 차종에서 배기가스 저감장치 소프트웨어가 조작된 사실을 적발했다.
승인검사 때만 저감장치를 작동시키고 일반 주행 때는 멈추게 해 연비는 높이는 한편, 오염물질은 기준치 대비 최대 40배가량 더 내뿜는 희대의 사기극을 미 당국이 잡아낸 것이다.
이로 인해 폭스바겐은 2009년 이후 미국에서 팔린 폭스바겐 48만2000대에 대해 리콜 명령을 받았고, 문제가 된 차종의 생산도 중지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만 180억 달러(약 21조원)의 벌금을 납부해야하는 위기에 처했다.
특히 당초 알려진 차량보다 훨씬 많은 약 1100만 대의 자사 브랜드 디젤 차량에 ‘눈속임‘ 차단장치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지며 전 세계적으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국내 수입차 점유율 1위인 폭스바겐 디젤차 4종(골프, 제타, 비틀, 아우디 A3)에 대해 재조사에 나섰다. 이르면 11월 말쯤 조사결과가 나올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환경부는 한국에서도 저감장치가 조작된 차량이 수입된 것이 확인되면 판매금지 및 기존 차량에 대한 리콜을 명령할 방침이다.
앞서 환경부 수도권대기환경청이 지난 7월 2014년 출시된 국산차 133종과 수입차 419종을 대상으로 배출가스 등급을 조사한 결과, 현대·기아차 등 국산차는 평균 2.48등급, 수입차는 2.73등급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배출가스 등급은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1~5등급으로 구분된다. 1등급에 가까울수록 대기오염물질 발생량이 적다.
가뜩이나 외제차가 국산차 보다 온실가스·대기오염 수치가 높단 얘긴데, 정부가 이번 ‘폭스바겐 사기극’을 계기로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외제차의 전수조사에 나설 경우, 상당한 파장이 일 전망이다.
이 사태로 폭스바겐 주가는 올해 3월 고점 대비 반토막이 나며 80조원이 증발했다. 독일 현지에서는 “이번 일로 세계 2위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이 망할 수도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올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외제차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23% 급증하며 성장세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벤츠, BMW, 폭스바겐 등 외제차 ‘빅3’ 브랜드가 이미지를 추락시킬 대형사고를 잇달아 치며 성장세가 한 풀 꺾일 전망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에서 잘 나가던 유명 브랜드의 외제차가 잇달아 구설수에 오르며 국산차들이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강력한 경쟁자들이 줄지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며 외제차를 선택하려던 고객들이 마음을 돌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벤츠, BMW, 폭스바겐 등이 돌아가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는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안고 있던 문제들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이라며 “외제차의 연비, 환경오염 문제를 소비자들이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허주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