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항공사, 높은 연봉·좋은 환경으로 ‘유혹’
저비용 항공사 늘어 조종사 선택 폭 넓어져
올해 조종사 수십명 대한항공·아시아나 떠나
지난해 기준 국내 항공사 조종사 수는 5300여명이다. 이중 대한항공 소속이 2700여명, 아시아나항공 소속이 1300여명이다. 전체 조종사의 75%가 국내 양대 항공사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 소속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들의 이탈 러시가 가속화되고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올해 들어 조종사 5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아시아나에서도 공식 집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적잖은 인원이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진다.
이탈 조종사 중 기장들은 대부분 중국 항공사로 이직을 했고, 부기장들은 중국 항공사나 국내 저비용 항공사로 자리를 옮겼다. 국내에서 1년에 70∼80명의 기장이 양성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장들의 잇단 중국행은 향후 양대 항공사에 치명적인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각각 100여대, 50여대의 새 항공기 도입을 결정한 터라 조종사 증원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인원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떠나는 조종사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항공사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퇴사를 앞둔 대한항공의 A부기장은 지난 6일 사내 게시판에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그는 ‘조양호 회장님께’라는 글에서 “말을 해도 계속되는 단체협약 위반, 타 항공사와 비교도 되지 않는 월급, 사소한 실수에도 마녀사냥처럼 계속되는 각종 징계, 느린 승급 등으로 많은 운항승무원들이 대한항공을 떠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전자 게시판에도 ▲단협을 위반하는 무리한 비행 스케줄 및 비행 ▲폐쇄적 사내 구조 ▲승급의 불투명성 ▲연봉 문제 등을 지적하며 떠날 것을 고민하는 조종사들의 글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병호 대한항공 인력관리본부장은 A부기장 등의 주장에 대해 “일부 직원들이 갖고 있는 회사에 대한 오해는 소통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노조는 “사측이 직원의 올바른 문제 지적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책임을 직원들에게 전가시켜버리고 있다”며 재반박했다.
온도차는 있지만 아시아나 조종사 노동조합 게시판에도 ‘열악한’ 회사 분위기를 원망하는 글이 적지 않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경력 10년 이상 기장들은 연장·야간·휴일수당 등을 포함해 1억5000만원 안팎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국 항공사들은 기종에 따라 연봉 2억~3억원대를 제시하고 있다. 베이징 캐피털 에어라인은 세후 연봉 3억4000만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높은 연봉을 주면서도 비행 스케줄은 국내 항공사에 비해 더 여유가 있다.
일례로 중국 항공사는 일본행처럼 비교적 짧은 거리를 운행하더라도 조종사 두 명씩 네 명이 탑승해 한 팀은 갈 때 조종하고 다른 팀은 올 때 조종한다. 이에 따라 조종사들의 업무 피로도가 줄어들어 사고 발생률도 낮다.
실제 최근 5년간 전 세계 항공기 운행 100만 건 당 사고비율은 평균 0.58건이지만, 중국 항공사는 0.06건으로 평균보다 10배가량 더 안전하다.
이런 점에서 양대 항공사 조종사들은 근무환경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중이 맞지 않는 절을 떠나는 심정’으로 중국행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지난 4일 ‘역주행하는 대한항공’이라는 성명에서 “대한항공 조종사들 상당수가 현격한 급여 차이 때문에 외국 항공사로, 부기장들은 늦어지는 기장 승급 때문에 저가 항공사로 이직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도록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 게시판에는 “요즘 인사말이 ‘안녕하십니까?’에서 ‘언제 나가세요? 어디로 가세요?’로 바뀌고 있다”는 웃지 못할 글이 등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사측 입장에서는 조종사 노조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탈의 주요 원인인 조종사 대우 문제 등은 단기적으로 해결될 부분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양측이 충분한 협의를 거쳐 합의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CNB=허주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