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하반기 최우선 국정 과제로 ‘노동개혁’을 선정하고 그 핵심과제로 꼽은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올해 안에 전 공공기관에 도입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임금을 깎는다는 초강수까지 뒀다. 이에 화답해 재계도 동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11일 내년부터 전 그룹사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현대차는 임금피크제를 통해 정년 연장에 대한 인건비 추가부담을 줄이는 한편 절약한 임금으로 연간 1000개 이상의 청년고용 확대를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와 현대차의 이 같은 발표에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퇴직을 앞둔 몇 해 전부터 해마다 임금을 깎는다는 민감한 사안인 임금피크제의 적용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서는 노동계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공공기관이야 정부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지만, 민간 기업의 경우에는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노조원 절반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일방적 발표와 밀어붙이기로 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 노총은 성명을 통해 “청년 일자리 창출은 핑계고 노동자 임금을 삭감하자는 의도”라며 반발했다.
이경훈 현대차 노조위원장도 “노사 간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사측의 임금피크제 도입 발표는 조합 차원에서 절대 묵과할 수 없다”며 “어떠한 형태의 임금피크제 도입이라도 조합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노동계의 동의 없는 노동개혁에 제동을 거는 한편 재벌개혁을 부각시키면서 법인세 정상화와 경제민주화 공약의 입법화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사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더라도 실효성은 의문이다. 공공기관과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50대 중반까지 직장을 다니는 이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60세 정년을 채울 수 있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10%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의 임금을 일부 삭감해 청년 고용을 확대하겠다는 발상이 효과를 거둘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는 방식의 땜질식 처방은 자칫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특히 현대차는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생기는 여유자금으로 청년 고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113조 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도 청년 고용을 확대하지 않던 회사가 임금피크제로 수백억 원의 여윳돈이 생겼다고 갑자기 고용을 확대할지는 의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년 고용을 앞세운 정부와 현대차의 발표에 노동계가 반발하며, '청년 실업의 책임이 노동계에 있다'는 듯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청년 실업의 1차적 책임은 수백조 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도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않는 대기업에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청년 고용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진행되는 일방적 임금피크제 밀어붙이기는 결국 노동자들의 양보만 요구하고 있다”며 “청년 일자리 창출은 기업들의 투자 확대와 노동시간 피크제 등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노동시장을 바꿔야 한다는 대의에는 이의를 제기할 이들이 많지 않다. 다만 노동시장을 바꾸기 위한 방안은 노-사-정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깊이 숙고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주인공 중 한 명이 배제된 일방적 결정은 반발만 키울 뿐이다.
(CNB=허주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