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당시 보령제약 김승호 사장은 일본 제약전문지의 선진국 의약품 업계 시찰 행사에 초청돼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았다.
국내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의약품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그중에서도 짜먹는 위장약이 김 사장의 눈길을 끌었다. 알약이나 가루약밖에 없던 시절 현탁액(미세한 입자가 물에 섞여 걸쭉한 형태) 형태의 위장약은 김 사장에게 무척 생소했다.
이후 보령제약은 1972년 3월 프랑스 제약사와 기술제휴 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프랑스 제약사에서 생산, 판매하고 있던 위장약은 전 세계에서 무려 10억포 이상 판매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현탁액 위장약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효능 효과를 볼 때 국내에서도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높은 제품이었다. 맵고 짜게 먹는 게 습관화되어 있는 한국인의 식성뿐 아니라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야근, 스트레스, 음주 등으로 위장병 환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위장질환은 광복 후에 고혈압, 심장병과 더불어 3대 주요 질환으로 꼽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령제약은 1972년 기술 제휴를 체결한 후 철저한 기술도입 및 검증과정을 거치며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준비해 1975년 6월부터 본격적인 겔포스 생산을 시작했다.
겔포스는 현탁액을 뜻하는 ‘겔(Gel)’과 강력한 제산 효과를 뜻하는 포스(Force)가 합쳐진 이름이다. 겔포스는 너무 많이 분비된 위산을 알칼리성 물질로 중화시켜 속쓰림, 더부룩함 같은 증상을 완화한다.
하지만 첫해에는 매출이 6000여만원에 불과했다. 물약, 가루약, 알약이 전부이던 당시에 걸쭉한 약은 소비자에게 너무 생소했던 것이다.
시대가 키운 겔포스
하지만 겔포스는 곧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이는 시대적인 효과가 컸다. 1970년대 중반은 근로자라면 누구나 이른 아침 출근해 통행금지 직전 귀가하던 중노동 시대였다. 1년 내내 이어지는 과로를 쓴 대포 한잔으로 날리는 것이 근로자들의 낙이었다.
자연히 위장병이 늘어났고 겔포스는 ‘위벽을 감싸 줘 술 마시기 전에 먹으면 술이 덜 취하고 위장을 보호한다’는 입소문과 함께 날개가 돋친 듯이 판매됐다.
4년 만인 1979년 매출액은 17배 가량 늘어나 10억원에 달했다.
겔포스는 80년대 초반 ‘위장병 잡혔어’라는 카피로, 80년대 중후반에는 수사반장 시리즈의 광고 컨셉으로, 90년대 초반에는 ‘속쓰림엔 역시 겔포스’라는 카피의 광고 등으로 꾸준히 소비자 인지도를 유지해 나가면서 시장의 경쟁력을 이어왔다.
지면광고 중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광고는 80년대 초 철모와 나비를 매치시킨 ‘위장에 평화를…’이라는 광고였다. 80년대 당시 이 광고를 처음 내보냈을 때 보안사에서 연락이 왔다. 국방법에 군장비를 매개로 한 광고는 못하도록 돼 있었던 것.
이 광고를 봐서는 군인이 죽어서 폐전했다는 의미로 보인다는 것이 보안사의 이유였다. 당시 기술 제휴사였던 프랑스 제약사도 이 광고 시안을 보고는 ‘Good~’을 연발하며 찬사를 보낸 명광고였지만, 단 하루 만에 사장(死藏)된 안타까운 불후의 명작으로 남게 됐다.
이후 당시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MBC TV의 ‘수사반장’에서 주역을 맡았던 최불암씨 등 유명 탤런트들을 캐스팅한 광고는 “위장병, 잡혔어!”라는 말을 최고의 인기어로 유행시키기도 했다.
특허 받은 위장약
겔포스는 액체가 유동성을 잃고 고정화된 상태, 즉 콜로이드(Colloid)타입의 제재다. 콜로이드 입자는 표면적이 크기 때문에 입자에 다른 분자나 이온이 붙기가 쉬워 흡착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콜로이드 제재인 겔포스는 두 가지 겔(Gel)로 되어있는데, 그 하나는 인산알루미늄겔이고 다른 하나는 천연 겔인 팩틴(Pectin)과 한천(Agar-Agra)을 결합한 겔이다. 이 두 성분이 상호작용과 보완을 통한 우수한 피복작용으로 위산이나 펩신으로부터 위벽을 보호하고 궤양발생예방 및 상처 부위를 보호한다.
겔포스는 수소이온을 고착시켜 강력한 중화작용이 발현된다. 혈액 내에 존재하는 인산완충계와 유사한 원리로 지속적인 완충작용(8시간)을 발현(위내 pH2.5-3.5 유지)하며 산반동을 유발하지 않고 지속적 제산효과 발현 콜로이드 입자의 우수한 흡착성에 의해 이상 발현된 가스, 박테리아, 독소, 바이러스 등을 흡착 중화시켜 장질환에 매우 효과적이다.
겔포스의 뒤를 이어 2000년 새롭게 선보인 겔포스엠은 겔포스의 성분 및 효능효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제품이다. 보령제약 중앙연구소에서 4년여의 연구개발과 2년여의 임상실험을 거쳐 탄생한 겔포스엠은 위보호막 형성 작용이 더욱 강력해진 것이 특징이다.
인산알루미늄, 수산화마그네슘, 시메치콘을 추가 처방한 겔포스엠은 소화성 궤양환자는 물론 장기간 와병환자들도 변비나 설사 등의 부담 없이 복용할 수 있도록 했다.
겔포스엠은 펙틴, 한천에 인산알루미늄을 추가해 흡착, 중화작용을 강화했으며, 알루미늄염과마그네슘염을 첨가해 제산효과를 더욱 높였을 뿐 아니라, 위장관계부작용은 더욱 감소시켰다.
또한 시메치콘을 추가해 가스제거, 인산이온 세포재생 함께 인결핍증을 예방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조성물들은 모두 특허 등록되어 있어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산제 중에서는 유일하게 조성물 특허를 보유한 제품이다.
해외에서도 대박
겔포스는 요즘 외국에서도 히트 상품이다. 1980년부터 수출한 대만에서는 제산제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한때는 점유율 95%, 모방 제품 99개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겔포스는 중국에 진출한 첫 국산 약이기도 하다. 중국과 국교 수립한 첫해부터 수출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중국에서 인기를 끈 것은 아니다. 당시 중국은 1970년대 국내 상황과 같아서 ‘속쓰림’을 위장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냥 참고 견디면 되지, 무슨 약을 먹느냐’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소화제는 있었지만 위장약은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
이에 따라 첫해 수출액은 30만포 분량으로 3억원 정도의 매출에 그쳤다. 중국에서는 겔포스가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돼 소비자에게 직접 알릴 수도 없고, 처방전을 받아도 일부 성(省)에서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약값을 모두 환자가 부담한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중국의 경제 발전, 식생활 변화, 소득수준 향상 등으로 겔포스를 찾는 중국인이 계속 늘고 있다.
매출은 중국 진출 12년째인 2004년에 100억원을 넘기고 이후 매년 20%이상 성장해 2014년에는 약 500억원을 기록했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에서 팔린 양을 따져보면 1억3000만명의 중국인이 1포씩 복용할 수 있는 양(중국 판매기준)이다. 지금은 중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국내 제약사 제품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수출되고 있는 국산약이기도 하다.
1975년 출시된 겔포스는 이제 마흔 살이 된다. 그동안 팔린 겔포스는 16억5700만포(국내 판매 기준)로, 한 줄로 늘어놓으면 지구를 4바퀴이상을 감쌀 수 있는 양이다. 겔포스의 국내 제산제 일반의약품 시장점유율은 58.4%, 상표선호도는 82%, 소비자인지도는 98.2%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말 그대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약이 됐다.
겔포스는 또 한 번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조만간 중국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또한 중국에서 일반의약품허가, 국가 건강보험에 등재가 되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태홍 보령제약 사장은 “겔포스의 효능은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이 끝났다”며 “중국 시장 확대를 위한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하반기 신제품 발매를 준비하고 있으며, 젊은층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티켓에 맞춘 신규 CF를 준비하고 있으며, 유통 액티비티도 강화해 국민 위장약으로서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할 예정이다.
(CNB=허주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