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포스코건설 임원들의 비자금 조성 및 횡령 의혹을 강도 높게 조사 중인 가운데, 지난해 불거진 말단 여직원 100억원대 횡령 사건과 이번 사건이 유사한 점이 많아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빌딩 모습. (사진=연합뉴스)
檢, 수백억 가로챈 여직원 다시 조사
박모 상무 “상부지시로 비자금 조성”
퍼즐 맞춰보면 정 前부회장 ‘꼭지점’
“월 마감 이후 매월 초 증빙 총괄표를 출력해 10일까지 증빙서류를 재무관리 그룹에 보내야 했으나, 대부분 발송하지 않았다. 재무관리 그룹에서 분기별로 한 번씩 본인에게 독촉이 왔고, 보내겠다고 이야기하면 다시 확인을 하지 않았다.”(수감 중인 여직원 A씨의 증언 중)
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는 최근 100억원대 횡령 혐의로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전직 포스코건설 계약직 여직원 A(34)씨를 불러 조사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109억원을 횡령한 혐의가 확정돼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A씨의 횡령액 중 절반가량의 사용처는 항소심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은 이 돈이 경영진과 공모해서 비자금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횡령이 개인 착복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정황은 여러 군데서 드러나고 있다.
포스코건설 토목환경사업본부가 당시 정동화 포스코건설 부회장에게까지 보고한 ‘현장 숙소 임차보증금 횡령 사건 보고’라는 제목의 회사 내부 문서에는 포스코건설이 회사 공식 입장을 밝히기 전 이미 A씨가 5개 현장에서 122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스코건설은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횡령액이 30억원에 불과하다”며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건설은 “지난해 초만 해도 자체 감사를 통해 확인된 것이 30억원이었을 뿐 축소하려던 게 아니다”라며 “검찰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100억원대로 규모가 늘어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말단 경리가 마음대로 100억원대 회사 경비를 빼서 쓰고, 뒤늦게 이를 확인한 회사가 피해규모를 축소 신고했다는 것은 내부 자금관리 시스템이 심각할 정도로 부실하거나 알고도 묵인했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이 돈이 회사 차원의 ‘검은 돈’으로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23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을 나서던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씨의 판결문에 따르면 포스코건설이 A씨에게서 회수한 금액은 부동산과 차량, 명품, 현금 등 60억~70억원인데, 사측이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등 나머지 횡령금 회수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추측에 힘을 싣고 있다.
횡령수법은 간단했다. A씨의 피의자신문조서와 재판 기록을 살펴보면 포스코건설의 현장전도금(본사에서 현장사업장에 보내주는 경비)은 누구나 손쉽게 빼갈 수 있을 정도로 허술했다.
일례로 A씨가 공사현장 직원 숙소를 임차했다고 ‘허위 전표’를 청구하면, 본사는 별도의 확인 없이 전도금 통장으로 임차보증금을 보냈다. 심지어 A씨는 전도금 통장에서 자신과 남편 계좌 등으로 거액을 이체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믿는 구석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A씨뿐이 아니다. 전직 포스코건설 베트남 법인장 박모(52) 전 상무는 2009년 8월~2013년 6월까지 베트남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하청업체를 통해 조성된 비자금 100억여원을 전달받아 이 가운데 4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4월 기소된 상태다.
박 전 상무는 법원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3일 진행된 세번째 공판에서 박 전 상무 측은 “(회사 돈을) 빼돌려 쓴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상부의 승인이나 지시를 받아 이뤄진 것이라 개인적 횡령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 또한 전도금을 빼돌리는 방법으로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퍼즐을 맞춰 보면 A씨와 박 전 상무가 조성한 비자금은 정 전 부회장의 바자금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정 전 부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했던 금고지기를 찾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건설업계 회계관행이 허술하다 해도 말단 여직원부터 고위 임원까지 같은 수법으로 수백억원대 횡령을 저질렀는데 회사에서 이를 몰랐다는 건 말이 안된다”며 “각각의 사건들이 하나의 컨트롤타워로 연결돼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CNB=허주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