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2월 당시 노태우 보안사령관의 미움을 받아 강제전역을 당했다며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전역처분 무효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패소한 김충립 전 특전사령부 보안반장(68· 전 미주조선 편집국장)이 최근 항소심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항소심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 등 주요 관련자들에 대한 증인신청서까지 제출했다. 경우에 따라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김씨는 1979년 12.12사태 때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로 정호용 특전사령관의 보좌역을 겸했다. 김씨 주장에 따르면, 그는 정호용의 측근으로 분류돼 전두환·정호용 등과 경쟁 관계에 있던 노 전 대통령의 미움을 샀다.
12.12사태로 집권한 신군부는 당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미묘한 신경전을 펼쳤다.
이들을 비롯, 육군사관학교 11·12기생이 주축이 된 ‘하나회’는 12.12사태, 5.17쿠데타를 주도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그러다 전두환 당시 국가보위입법회의 상임위원장이 1980년 9월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하자, 노 전 대통령 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내쳤다는 게 김씨 주장이다.
김씨는 “부친을 용공혐의로 조사하겠다는 보안사의 위협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강제전역서를 쓰게 됐다”며 2014년 1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ROTC(학생군사교육단) 출신이라 하나회에 끼지 못했던 김씨는 이들 간의 파워게임에서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뒤늦은 소송 배경에 대해 “이 사건으로 한국에 있으면 저와 가족들에게 어떤 위해가 미칠지 두려워 1981년 미국으로 이주해 30여년간 미국에서 지냈다”며 “불명예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어 조국을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사실을 바로잡아 본인과 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길고 긴 진실공방…증인 출석 쟁점
하지만 지난해 10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문준필 부장판사)는 “(김씨가) 증거로 제출한 관련자들의 확인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역 경위를 들어서 알게 됐다거나 추측을 담고 있어 증거로 보기 어렵다”며 “전역지원서 작성도 의사결정의 자유가 완전히 박탈된 상태에서 작성, 제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던 ‘노태우-김충립 강제전역 소송전’은 2라운드를 앞두고 있다. 김씨는 즉각 항소했고, 오는 3월10일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CNB가 단독입수한 김씨의 항소이유서에는 “본인에게 용공혐의를 씌워 노 전 대통령이 강제전역 시킨 내용은 사안의 특성상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사안이라 이를 직접 실행하고 목격한 사람의 증언 등을 통해서 입증할 수밖에 없다”며 “항소심에서 정호용(당시 특전사령관), 안병호(당시 노태우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박준근(전역 처리 실무 담당 인사장교), 조용암(당시 인사처장)을 증인으로 신청한다”고 적혀 있다.
이후 실제 법정에 제출된 증인신청서에는 노 전 대통령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노 전 대통령, 정 전 사령관, 안 전 비서실장, 조 전 인사처장 등 4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노 전 대통령의 증인 출석 여부는 항소심 첫 공판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워낙 오래된 사건인데다 주요 증거들이 남아있지 않아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재판부가 증인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열려 있다. 자칫 전직 대통령이 불미스러운 일로 다시 한 번 법정에 서게 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김씨는 16일 CNB와 만나 “항소심 첫 공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증인 출석을 강하게 요청할 것”이라며 “출석을 요청한 다른 증인들까지 모두 나오게 되면 1심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우선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뒤 10년 넘게 연희동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해왔다. 현재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또 다른 핵심 증인인 안 전 비서실장은 김씨가 군내 하나회 척결에 직접 연관됐고, 신군부세력들에 대해 비판적 글과 활동을 해왔다는 이유 등으로 반감이 커 증인으로 채택되더라도 실제 출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 다른 증인인 정 전 사령관은 관련 내용을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라 전해들은 것이어서 항소심에 증인으로 나오더라도 1심에서 제출한 진술서와 마찬가지로 증거로 채택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김씨의 전역 조치를 실제로 처리한 조 전 인사처장은 증인으로 채택이 될 경우 출석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출석 여부와 증언이 주목되는 이유다.
한편 김씨는 지난 1968년 ROTC 6기로 임관해 보안사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미국으로 이주해 목회학을 전공,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후 미주한인 장로회 신학대학 교수, 미주조선 편집국장 등을 역임했다.
(CNB=허주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