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에 훈풍이 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가 당국간 회담을 북측에 제의한 데 대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부터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는 내년 1월 중에 남북간 상호 관심사에 대한 대화를 가질 것을 북측에 공식 제안했다”면서 “북측에 전통문을 보냈으며 북측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나오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1일 신년사에서 “우리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해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문별 회담도 할 수 있다”고 화답했다.
나아가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혀 정상회담까지 개최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특히 올해는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남북 양측이 모두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북한연구센터는 1일 ‘2015 북한 신년사 분석’ 보고서에서 “북한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남북관계에 대해 장황히 언급한 것은 기본적으로 관계 개선을 탐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며 “최근 한국의 대화 재개 용의 시그널에 대한 화답으로 해석이 가능하다”이라고 평가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대화 의지를 표명한 것에 대해 환영하면서 “국회도 정부와 2인3각을 이뤄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관건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5·24조치’ 해제 여부다. 5·24조치는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한 제재조치다.
2010년 3월 26일, 북한은 기습적인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을 침몰시킴으로써 우리의 젊은 장병 46명이 전사했다. 우리 정부는 천안함 폭침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짐에 따라 개성공단사업을 제외한 남북교역과 우리 국민의 방북을 불허하고 북한 선박의 우리측 수역 항해를 금지하는 5·24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야권을 중심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5·24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정부여당은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는 것을 5·24해제 명분으로 고수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5·24조치는 천안함 희생자 때문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그것(해제)을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권은희 대변인도 “여태껏 우리는 북한과의 약속이 번번이 무산되는 과정을 여러 번 겪었다. 남북 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서는 신뢰 관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며 “지금은 남북 당국간 회담을 성사시켜 대화와 협력의 물꼬를 트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계기로)5·24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간 현안이 타결되길 바란다”며 “한반도 평화에 큰 전기를 마련하도록 남북 당국은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화에 임해달라”고 촉구했다.
‘통일대박론’을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은 ‘조건 없는 5·24조치 해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박 대통령은 2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5년 신년인사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야당이) 5·24조치만 해제하라고 하면 (남북 간) 협상이 되겠느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5·24조치 해제의 남북대화 의제화 가능성과 관련해 “대화중에 그것까지 다 풀 수 있지만 (야당에서) 자꾸 소리가 커지면 협상능력이 떨어진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5·24조치 문제는 일단 남북 당국이 대화 재개시 논의할 수 있지만 우리 측이 먼저 5·24조치를 해제하면서 저자세로 나갈 수는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