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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근로자들은 왜 박정희를 그리워할까

파독 근로자 지원법안 제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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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정숙기자 |  2014.12.27 21:19:52

영화 ‘국제시장’에는 파독(派獨) 근로자들이 등장한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국가적 빈곤 극복을 위해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이다. 이제까지는 이들에 대해 제대로 다룬 영화가 없었다. 때문에 영화 속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모습은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독일은 선진국이다. 현 세대 중에는 독일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이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고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까지 파독 근로자들의 헌신이 있었다는 것은 이제야 드러나는 분위기다.

영화 속 모습과 지금까지의 기록 및 증언들을 보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상상을 뛰어 넘는 고된 육체노동을 했다. 탄광 일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본연의 간호 업무 외에도 시체를 닦으며 외화를 벌었다.  

요즘 세대라면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고 부모와 나아가 정권까지 원망할 법도 한 일들이다. 하지만 26일 서울의 한복판에 모인 파독 근로자들은 오히려 故 박정희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파독 51주년 기념 감사 송년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편지를 전달 받은 파독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 대표들이 편지를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왕진오 기자)

◇ 박근혜 대통령 “대한민국이 큰 빚 졌다… 마음 모아 감사”

이날 프레스센터에서는 파독 근로자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50년 만에 부치는 대통령 감사편지’ 행사가 진행됐다.

1963년 12월 21일,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사가 독일에 첫 파견됐다. 올해는 파독 51주년으로 대통령이 이들에게 감사편지를 전한 것은 1968년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46년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대독한 편지를 통해 “독일의 탄광에서, 병원에서 여러분께서 흘리셨던 땀과 눈물은 희망의 밑거름이 됐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갱도에서 누구보다 근면하게 일하셨던 여러분의 모습은 독일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고, 각 병원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셨던 간호사들의 모습은 독일 국민들에게 깊은 신뢰를 안겨 줬다”고 노고를 치하했다.

박 대통령은 “여러분의 그러한 헌신적인 모습과 신뢰를 토대로 한국과 독일은 지금까지도 각별한 우정과 신뢰를 쌓아오고 있다”며 “우리 대한민국은 여러분께 큰 빚을 지고 있다. 국민 모두의 마음을 모아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헌신과 열정, 조국과 가족에 대한 기여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후손들에게도 소중한 자산으로 길이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종섭 장관은 “파독 근로자 여러분이 우리에게 준 것은 경제적 도움뿐만이 아니었다”며 “손짓발짓으로 하나씩 배운 독일 사회와 경제, 라인강의 기적을 한강의 기적으로 만든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감사의 말을 남겼다.   

행사를 주최한 한상대 대한민국감사국민위원회 상임대표는 인사말에서 “끈기와 인내, 희망과 도전으로 민족 위대한 여정을 이끈 출발점이자 시금석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라며 “앞선 세대의 용기와 희생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은 축사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서 차관을 얻어낸 게 대한민국 근대화의 초석이 됐다. 독일이 우리에게 흔쾌히 차관을 준 이유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성실함과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라며 “50년 만에 전하는 감사가 대한민국의 갈등을 씻어내는 축복의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고창원 파독산업전사세계총연합회장은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에 국빈방문해 손을 잡아주며 반세기 노고를 잊지 않았던 데 이어 이런 감사편지를 전달해줘 고마움을 전한다”고 화답했다. 

▲1964년 12월,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사진=KTV 동영상 갈무리)

◇ 파독 근로자들 “박정희 대통령 고마워… 관심과 지원 필요”

1963년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독일에 파견된 근로자들은 광부 7천936명,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 1만1057명으로 기록돼 있다. 현재 파독 근로자들의 평균연령은 73세로, 이 중 3분의 1가량인 7천여 명만 생존해 있다.

독일에 남아 있는 근로자 중에서는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형편상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때문에 이들에 대한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26일 CNB와 만난 근로자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한편으로는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12월 독일 함보른탄광 공회당을 방문, 파독 근로자들에게 “조국이 못살고 가난해 이렇게 낯선 이역만리 타국에까지….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 아프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해 주변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날 파독영상을 시청할 때도 행사장 이곳저곳에서 70세가 넘은 노인이 된 근로자들의 눈물 흘리는 모습이 목격됐다.

1967년에 독일로 갔다는 김현진 한독간호협회 수석부회장은 “박 대통령이 1964년에 가서 근로자들을 격려하며 눈물을 흘린 기록은 동영상에 나와 있다”면서 “젊은 세대들은 왜 박 대통령이 울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아팠겠나”라고 말했다.

김 수석부회장은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제대로 모른다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이 있다”면서 “그 때 상황을 설명해줘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이 내가 못 살았으니까 우리 자식들은 부족함 없이 키우겠다며 쏟아준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광부로 파견됐다는 한 참석자는 “1964년에 광부로 갔던 분들은 많이 돌아가셨다”며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오셔서 광부들이 탄광에서 올라왔는데 시커먼 얼굴에 땀범벅이 된 것을 본 육영수 여사가 펑펑 울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1974년부터 82년까지 독일 광부로 일했다는 이모씨(76세)는 “독일에서 고생한 우리 세대는 박정희 대통령이 오히려 고맙다”며 “원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왜정(倭政)말기 때부터 자라온 사람들이라 힘든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광산에서 일한 사람들은 진폐(폐에 먼지가 쌓여 생기는 직업병)가 있다”며 “한국에서 일하다 경력자로 독일로 건너간 사람 중에는 진폐가 있어도 한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한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실제 파독 근로자들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한-독 수교 130주년 및 근로자 파독 50주년 기념 양국 우호협력증진 결의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하지만 파독 근로자들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법안은 발의된 적이 없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파독 근로자 중 국내 정착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5년간 한시적으로 국민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기로 하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입주 조건이 까다롭고 이마저도 5년에 그쳐 실질적인 지원 혜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대경 한국파독연합회장은 이날 “‘한강의 기적’이 퇴색되지 않도록 산 역사를 제대로 담을 파독근로자 기념관을 세워 후세대가 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각종 질병에 고통 받는 광부와 간호사들을 나라가 보살펴 달라”고 대통령에게 공개 청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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