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2014년 마지작 전시인 '김병기: 감각의 분할'전에는 김 화백의 국내에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었던 최근 10여 년 동안의 신작과 개인 소장가들이 소장한 미공개작을 포함, 회화 70여점과 드로잉 30여점이 소개된다.
김병기는 1950년대 초부터 서양 현대미술의 전개와 동시대의 흐름뿐 아니라 전통과 현대성, 아카데미즘과 전위, 구상과 추상을 주제로 많은 글을 발표하면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과 예리한 비판정신을 갖춘 논객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1965년 한국미술협회 3대 이사장으로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한 후 미국 뉴욕 주의 한적한 시골동네 사라토가에 홀연히 남아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찾는다.
한국 추상회화 형성기에 서구미술의 역사적 전개에 대해 면밀하게 고찰했던 김병기는 이때부터 현대적인 조형언어인 추상에 대해 질문을 시작한다.
그 결과 그의 정물화는 대상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인간존재의 고독과 존재에 대한 성찰에 대한 은유를 담아냈다.
그의 풍경화는 인간과 현실, 역사, 자연,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은유가 되었고, 작가는 스스로 '궁극의 예술'이라 천명하며 회화를 통해 예술과 인생, 자연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이를 표현했다'
회화를 통해 예술과 인생, 자연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이를 표현하고자 한 김병기는 무위(無爲)의 태도로 자기를 비워가며 질문을 하는 욕망의 주체로서 회화에 대한 인문적 통찰을 멈추지 않는 진행형의 화가다.
한 세기를 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한 삶과 예술의 의문과 풀리지 않는 모순들이 산적해 있다고 하는 작가에게서 우리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2003)가 말한 ‘조화롭지 못하고 평온하지 않은 긴장’의 실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평양 출신(광성고등보통학교 졸업)인 김병기는 어려서부터 평양의 신식문명과 전통적인 풍류를 동시에 누리며 성장했다.
한국에서 세 번째로 동경에서 서양화를 배운 아버진 김찬영의 뒤를 이어 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김병기는 김환기(1913∼74), 유영국(1916∼2002), 이중섭(1916∼1956) 등과 함께 초현실주의, 추상 등 1930년대 일본의 신흥미술을 직접 체험하고, 한국전쟁 전인 1948년 월남해 줄곧 한국 추상미술의 정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월남 이전에는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 월남 후에는 한국문화연구소 선전국장, 종군화가단 부단장을 역임하는 등 전후(戰後) 이데올로기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예술가이면서 행동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강사 및 서울예술고등학교 설립당시 미술과장을 지내면서 한국 미술교육의 토대를 다지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근현대미술의 역사를 보여주는 김병기의 역작들을 네 시기(추상의 실험 : 1950년대 중반~1970년대 초, 형상과 비형상의 공존 : 1970년대 초~1980년대 말, 감각의 분할 : 1980년대 말 ~ 2000년대 초, 미완(未完)의 미학 : 2000년대 초 ~ 현재)로 나누어 심도 있게 조명한다.
전시기간 동안 작가 인터뷰 등을 담은 다큐멘터리(감독: 이화실)가 상영되고, 작가의 작업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드로잉 및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작가의 생애와 예술을 입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전시는 2015년 3월 1일까지.
CNB=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