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업계의 갑을논란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핫이슈였다. 갑을 관계를 둘러싼 성난 여론은 CU편의점 운영사인 BGF 사장의 머리를 조아리게 했고, 편의점과 관련된 법을 바꿨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갑을관계는 식은 죽이 돼 버렸다. 2013년 화려하게 불타올랐던 갑을관계라는 말은 그 파괴력을 모두 소진했다. 더 이상 주목을 끌지 못한다.
그렇다면 갑을관계 문제는 해결이 됐는가? 아니다. 을(편의점업주)은 여전히 갑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수시로 찾아오는 위생점검, 자사 입장에 따른 비용 산정을 근거로 한 심야영업 강요, 업주들에게는 불리할 수 있는 심야미영업 합의서 사인 강요 등 여전히 을의 아우성은 진행중이다.
지난해처럼 갑의 횡포라고 이야기하기는 조심스럽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제도적인 보완책도 마련됐고, 편의점 본사들도 나름대로 노력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편의점 본사와 갈등하는 일부 점주들을 취재한 결과, 점주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짚고 넘어갈 부분은 있다. 편의점 본사 기준대로 판단해 심야영업을 강요하는 점이다. 미니스톱은 심야영업 시간대 적자를 보는 점주들은 심야영업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심야영업 때 지출되는 비용을 산정할 때 인건비만 포함하고 나머지 비용은 고려하지 않았다. 이를 기준으로 적자가 아닌 영업점은 심야영업을 계속해야 한다.
미니스톱은 합리적인 기준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점주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전기세나 상품폐기비용 등 인건비 외에 부대 비용은 상당하다는 것이다. 미니스톱이 그 기준을 산정할 때 점주들의 의견은 들었는지 의문이 든다. ‘상생’이라는 것이 이런 식의 일처리는 아닐 것이다.
편의점 갑을관계는 계속될 것이다.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 시장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배려’는 갑에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아니라, 갑에게 부탁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배려’가 이윤과 직결된다면, 갑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아니 달라진다.
남양유업은 을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남양유업은 2013년 당기순손실 455억원을 기록하며 20년 만에 적자를 봤다.
상품 밀어내기 등 온갖 방법으로 ‘을’을 쥐여짠 것이 국민적 공분을 샀고, 남양유업 불매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입은 타격이 컸다. 남양유업은 ‘배려’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피부로 깨달았을 것이다.
남양유업의 적자에는 여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갑보다 위에 있는 ‘슈퍼갑’ 소비자가 만든 결과다. 자본 시장이 항상 여론에 휘몰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과도한 갑질은 여론의 심판을 받아도 된다.
그것이 자본 시장에서 ‘배려’, ‘상생’과 같은 무형의 가치를 유형의 가치로 만들 수 있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치들이 장기적으로는 자본 시장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해본다.
(CNB=신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