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열린 민주당의 ‘3대 특검 종합대응특위’ 회의에서 판사 출신 박희승 의원은 현재 국회 법사위에서 심의 중인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며 이렇게 발언했다.
“국회가 나서서 (사법부를) 직접 공격하고 법안을 고쳐서 하는 것은 윤석열이 국회의 삼권 분립 정신을 무시하고 계엄을 발동해 총칼을 들고 들어온 것과 똑같다. 사법권은 법원에 있다고 헌법에 규정돼 있는데, 국회가 힘이 세다고 이렇게 마구잡이로 (법원을) 공격하는 것은 안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추진하는 내란특별재판부를 ‘계엄 같다’고 비판한 것이다. 우선 계엄이란 말을 이렇게 쉽게 써도 되는지 궁금하다.
국민을 포로 취급하는 게 계엄인데…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지난 1월에 펴낸 ‘K민주주의 내란의 끝’에서 계엄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martial law를 한자어로 번역한 고유명사입니다. 적의 영토를 점령한 군 지휘관에게 ‘왕의 권한’을 위임한 데에서 유래한 말이죠. 기본적으로 포로를 상대하는 ‘군법’이기 때문에, 일단 법 집행 방식 자체가 야만적이고 잔인했어요. (중략) 국내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건, 나라 전체를 계엄선포권자의 ‘점령지’로 만들고 국민 전체를 ‘포로’ 취급하는 행위예요. (중략) 계엄령은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행위예요.”(121~136쪽)
원래 점령한 적국 땅에 내리던 게 계엄령인데, 이를 국내에 선포하는 건 국민을 포로 취급하겠다는 것이란 해석이다. 박 의원의 규정대로라면 현재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 전담 특판부’, 줄여서 ‘내란 특판’은 사법부 전체를 민주당이 포로 취급하려 든다는, 즉 사법부의 권한을 야만적이고 잔인-무자비하게 빼앗으려 든다는 것이다.
박 의원의 발언은 또 이렇게 이어졌다. “헌법 101조에 따르면 헌법 개정 없이 국회가 논의해 내란특별재판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만약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통령이 받을지도 의심스럽지만 위헌제청 신청이 들어갈 것이다. 내란 재판을 통해 내란 사범을 정확히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아니면 두고두고 시비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내란특별재판부를 통해) 재판을 했다가, 재판부 구성 자체를 놓고 위헌이 나버리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 자꾸 법원을 난상 공격하는 것은 잘못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작년과 재작년 영장이 발부됐다면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귀연 재판부의 영장 기각 및 대법원 파기환송에 불만이 있다면 그런 부분을 딱 집어서 지적하고 법원 스스로 개혁하게 유도해야 한다.”
결국 사법부에 불만이 있어도 특판 따위를 설치하면 안 되며, 모든 걸 사법부에 맡겨 놓은 채 민주당은 비판에 머물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미국이나 유럽에서 대통령 또는 총리가 친위 쿠데타를 획책하다 미수에 그쳤는데도 박 의원처럼 “사법 판단은 전적으로 사법부에, 즉 오로지 판사에게만 맡겨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유무죄를 서구에선 왜 시민이, 또는 시민 참여로 결정?
잘 알려졌듯 영미법 계통에서는 국민 중에서 배심원을 무작위로 선발해 유무죄를 가리게 한다. 배심원단이 무죄라면 무조건 피고를 석방해야 하고, 유죄로 결정하면 판사가 법에 따라 적당한 형량만 결정한다.
독일 등 유럽 대륙 계열에선 판사 3명 + 민간 출신 참심원 3명으로 6인 재판부를 구성해 재판한다. ‘판사에게만’ 맡기는 게 아니라 국민 중 선발된 참심원이 판결에 참여한다.
배심제와 참심제 모두 ‘사법 민주화 제도들’이다. 사법적 판결이란 게 사법시험에 합격한 판사들만이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것 역시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하기에 이런 제도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독일 등 유럽 대륙의 판결문 첫 문장은 반드시 ‘국민의 이름으로(Im Namen des Volkes)’로 시작한다.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한국과 큰 차이가 난다.
우리 헌법도 헌법 기구를 규정하면서 가장 먼저 국회 구성에 대해 규정하고 이어 법원에 대해 규정했다. 국민이 직접 뽑는 국회가 먼저이며, 사법부는 국회가 만든 법의 틀 안에서만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내란 특판을 설치한다 해도 어디 외부에서 판사를 수혈해 오는 것도 아니고 기존 판사 중에서 법 절차에 따라 특판 판사를 임명할 텐데, 이를 사법부 전체를 국회가 포로 취급한다는 "계엄 같다"고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청래 당대표 등 당 지도부가 추진하는 내란 특판에 대해 박 의원처럼 민주당 안에서 반발이 나오면 이른바 보수 언론들이 좋아하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 기사가 적극 생산된다.
앞에서 오는 공격과 뒤에서 오는 공격
위험에 대한 여러 표현이 있다.
하나는 “뻔히 보이는 위험은 위험하지 않다”는 말이다. 위험해 보이면 조심하기에 크게 다치지 않는다는 소리다. 야당은 공격하게 돼 있기에 야당이나 야당 성향 언론의 공격에는 큰 타격을 받지 않는 게 보통이다. 으레 예상되는 공격이기에.
반면 전혀 대비하지 않다가 당하는 위험을 ‘블랙 스완’이라고 한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 배 두드리고 있는데 옆이나 뒤에서 공격당하면 된통, 치명적으로 당한다. 1998년 한국 IMF 위기, 2008년의 미국 금융위기가 그랬다.
박 의원의 경우처럼 ‘민주당 안에서도 반발이’ 기사가 양산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바로 블랙 스완급 위험의 출발점이 되기 쉽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조-중-동의 비난은 잘 견뎌냈지만 경향신문에서 ‘굿바이 노무현’ 칼럼이 나오면서, 즉 배후 공격을 당하면서 급속히 무너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2년 민주당 대표가 된 뒤, 즉 아랫물(당원)이 바뀌면서 윗물(국회의원)까지 갈아내는 드문 혁신이 이뤄진 뒤, 그 이전에는 한국의 보수 언론을 줄곧 장식하던 ‘민주당 안에서도 비판 목소리’ 류의 기사들, 즉 블랙 스완 류 기사들이 대폭 줄어들었다.
판사 출신 박희승 의원은 내란 특판을 계엄급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판사 출신의 다른 민주당 의원들, 즉 추미애, 박범계, 김승원 의원은 그렇지 않다. 현재 스코어 1 대 3이다.
또한 여론조사꽃의 여론조사에서 내란 특판은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고, 찬성 응답률도 상승세다(8월 4주차 58.7% → 9월 1주차 61.3%).
앞으로 박 의원의 “특판은 계엄” 진단이 맞을지, 아니면 ‘3대특검 종합대응특위 총괄위원장’인 전현희 의원의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에 위헌성-위법성은 없다”는 판단이 맞을지는 두고봐야 할 것이다. 물론 헌법상 원칙은 분명하다. 국민이 가장 위이고, 그 다음이 국회며, 사법부는 그 다음이다. 국민이 원하면 입법부와 사법부는 순서대로 따르라는 게 헌법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