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 운행 시작한 ‘딜리’의 뒤 밟아보니
무릎 닿는 키에 아담한 체구로 길 누벼
최대 20kg 싣고 사람 걷는 속도로 이동
‘안전’을 최우선으로 1.5km 내 신속 배달
도로교통법상 보행자…안착엔 시간 걸릴듯
할 거 많고 볼 거 많은 바쁜 시대. CNB뉴스가 시간을 아껴드립니다. 먼저 가서 눈과 귀에 담은 모든 것을 전합니다. 이번에는 우아한형제들이 강남 일대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는 배민 B마트 로봇 기사를 따라 가봤습니다. <편집자주>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지난달 25일부터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과 역삼동 일대에서 로봇 배달 ‘딜리’의 시범 운행을 시작했다. 배민 B마트 도심형 유통센터(PPC)를 중심으로 평일 오후 2~9시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달 28일 로봇 기사 ‘딜리’의 뒤를 밟아봤다.
정사각형 몸통에 달린 크고 동그란 두 눈, 작은 코, 이마에 달린 아담한 뿔, 6개의 바퀴까지. ‘스폰지밥’을 닮은 딜리는 안에 전기 배터리가 있어 하루 7시간은 거뜬히 버틴다.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속도로 주행하며, 최고 속도는 초속 1.5m, 최대 이동거리는 1.5㎞이다. 물건은 최대 20kg까지 실을 수 있다.
이날 딜리는 사람이 없는 큰길에선 빨리, 혼잡한 좁은 길에선 천천히 달렸다. 횡단보도 앞에선 잠시 멈춰서 신호등이 초록불이 될 때를 기다리며, 차나 사람이 앞에 있을 땐 돌아간다. 이처럼 딜리는 차도와 도보의 구분이 모호한 이면도로를 위화감 없이 다니도록 설계됐다. 지난해 7월 ‘실외이동로봇 운행안전인증’을 받은 딜리는 동행자 없이 단독 주행이 가능하며 도로교통법상 보행자로 취급된다.
사람도, 차도, 신호등도 ‘OK’
사람과 차 모두 다니는 길인만큼, ‘빨리’보다 ‘안전하게’가 중요한 화두였다. 딜리는 전방 센서를 탑재해 사람과 장애물을 인식하고, 레이더로 양 측면을 감지한다. 사람보다 넓은 시야로 장애물과 장애물 사이 공간이 통과 가능한지 측정하고, 가능하지 않으면 기다리거나 옆으로 돌아간다.
또한, 후방 카메라는 실시간 관제가 가능해 문제가 발생하면 오퍼레이터가 수리한다. 또 움직일 땐 음악이 흐르고, 오른쪽엔 깃발을 꽂아 보행자와 운전자가 ‘딜리’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했다.
뒤로 비켜주기도 한다. 이날 차가 딜리 쪽으로 전진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딜리는 이를 눈치채고 차가 다가오자 빠르게 뒤로 비켜줬다. 도시의 복잡한 도로 상황을 실시간 감지 시스템과 데이터, 알고리즘으로 확인하고 똑똑하게 대처하는 모습이었다.
배달 과정은 간단하다. 기존 배민 앱에서 B마트 페이지로 들어가고, 장바구니에서 ‘로봇배달’ 옵션을 선택하면 된다. ‘배달도착’ 문자를 받으면 하단의 ‘문 열기’ 버튼을 눌러 물건을 꺼내면 된다. 로봇의 짐칸은 오직 사용자의 시스템으로만 열고 닫히며, 일부러 무리하지 않는 이상 무력으로는 열리지 않는다.
다만 딜리가 단독으로 음식 배달을 당장 시행하기엔 시기상조로 보인다.
배민 B마트는 정해진 PPC에서 출발해 직원이 관리하는 시스템이지만, 음식 배달 같은 경우 개별 음식점에 딜리가 찾아가야 하고, 업주들도 로봇 사용법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해서 아직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배달 로봇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고, 거점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게 배민 관계자의 설명이다.
AI·로봇의 민족을 향해
그럼에도 우아한형제들은 로봇 개발과 자체 업무 혁신을 통해 향후 음식점까지 로봇 배달을 확장는 게 목표다. 배민 관계자는 “기존 대면 배달 마지막에 로봇을 활용한 ‘라스트 마일’ 제도를 활용하면 보다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라스트 마일’이란 아파트나 건물 입구까지는 기존 라이더가 배달하고, 입구에서 구체적인 동호수까지는 로봇이 처리하는 방식이다. 분초를 다투는 라이더한테도, 아직 장거리 주행이 버거운 로봇한테도 희소식이다.
이 밖에도 배민은 AI를 활용해 메뉴를 추천하는가 하면, 지난 2020부턴 ‘AI 추천배차’ 시스템을 도입해 라이더에게 배차를 제안했다. 또 자회사 ‘B로보틱스(B-ROBOTICS)’는 업주에게 서빙 로봇을 대여하는 사업을 진행한다.
이처럼 우아한형제들은 AI와 로봇을 중심으로 퀵커머스와 요식업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황현규 우아한형제들 로봇프로덕트전략팀장은 “빠르게 성장하는 퀵커머스 시장에 자체 개발한 배달 로봇을 투입해 고객의 배달 편의를 높이는 동시에, 로봇 기술과 서비스를 더욱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NB뉴스=홍지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