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23일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처리될 예정인 ‘집중투표제’를 두고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고 있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 단체나 금융당국, 정치권 등에서 대표적인 소액주주 보호제도로 적극 권장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금융당국은 집중투표제가 기업 지배구조를 나타내는 핵심 정보라고 판단,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들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를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상장사의 지배구조에 대한 정보를 주주 등 관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데, 해당 보고서에 명시해야 하는 15개 핵심 지표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포함돼 있다.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적인 정보로 많은 주주들이 이를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19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에 공개를 의무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적어도 이때부터 집중투표제 도입을 공식 권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소수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 중으로, 법 개정을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하지만 MBK 측은 고려아연에 집중투표제가 적용될 경우, 고려아연 인수와 투자금 회수 등의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중투표제는 개미 주주를 위한 제도로 적극 권장돼 왔다는 점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 등을 내세웠던 MBK가 이를 반대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자신들이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면서 자신이 내세운 명분을 스스로 걷어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고려아연 내 소수주주의 목소리가 높아질 경우, 투자금 회수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도 반대의 이유로 꼽힌다.
특히 집행임원제와 이사회 장악을 위해 자신들이 추천한 14명의 이사 선임의 건 외에 주주가치 제고나 소액주주들을 위한 안건을 하나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려아연의 현 이사회가 다양한 주주친화정책을 내놓자 표 대결에서 불리해질 것을 의식해 반대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이사회에서 내달 열릴 임시 주총 안건을 확정했다. 이 중 고려아연 주주인 유미개발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안’이 주목받았다.
기존의 단순 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경우 과반의 주식을 소유한 대주주의 의사에 따라 모든 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집중투표 방식을 이용하면 소수주주의 의결권을 집중해 이들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모든 이사가 대주주의 의사대로 선임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MBK 측은 집중투표제의 취지와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이번엔 안된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유미개발의 집중투표제 도입 주주제안의 절차상 문제점 등을 거론하며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조건부 집중투표 청구(정지조건부 주주제안)는 다수 타기업 주총 사례가 이미 실행됐을 정도로 선례가 존재하는 데도 반대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MBK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고려아연 인수의 명분으로 내세워 놓고, 소수주주 권익 보호의 대표 제도로 꼽히는 집중투표제를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MBK 측 이외 주주들 역시 집중투표제가 주주권 강화의 핵심제도라는 점에서 도입에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