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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강 노벨문학상과 창의적 상상력, 노벨 과학·의학·경제학상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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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손정호기자 |  2024.12.23 10:34:15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연극극장에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소설가의 ‘노벨 낭독의 밤’ 포스터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강 소설가가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콘서트홀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에게서 한국인 중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두 번째이다. 노벨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시상식을 진행한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경제학상 등 다른 분야 수상자들과 함께 스웨덴에서 노벨상을 받은 건 한강 작가가 처음이다.

한강 소설가는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 등의 시적인 장편소설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표현해왔다. 5·18 광주 시민혁명, 제주 4·3 사건 등을 예술가의 시선에서 재현해 다시 관심을 갖게 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국회의 해제, 탄핵 추진이 진행되며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는 느낌이 슬프다.

‘한강 노벨문학상 함께한 기업’ 시리즈로 교보생명, 삼성, HDC그룹 등에 대한 기사도 취재해서 썼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두 명의 사람이 더 떠올랐다.

한 명은 한강 소설가에게 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했다고 했던 박기동 교수이다. 박기동 교수는 한강 작가와 같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바다에 은빛 고기 떼’ ‘쓸쓸한 외계인’ 등을 발표했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이자 피해자이기도 했다. 한강 작가가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을 때 전화를 해와서 기뻤다고, 서강대 인근 카페의 문학 수업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몇 년 전에 하늘의 별이 된 박기동 교수는 인공지능(AI) 구현과 관련된 특허를 갖고 있었다. 이메일로 보내준 파일의 제목은 ‘한국어 자연어의 어휘 분석을 통한 감성 및 성향분석 솔루션’이다. 특허청 특허증 발명의 명칭은 ‘글에 쓰인 어휘 분석을 통한 글쓴이의 성향분석 솔루션’이다. AI 로봇 등의 대화에 한국어 영역에서의 응용 가능성을 타진해온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김초엽, 배명훈 소설가 등 SF 작가들도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주의에 기반한 순수문학에서도 과학적 탐구가 진지하게 이뤄졌다는 증거로 보인다.

 

우리나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손정호 기자)

다른 한 명은 주수자 소설가이다. 최근에 주수자 소설가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서 간송 전형필 선생이 보존하도록 하고, 이를 체계화한 국문학자 김태준에 대한 장편소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를 발표했다. 박기동 교수가 그녀의 ‘빗소리 몽환도’를 추천해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의 국문학자 김태준은 일제 시대 때 좌파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었다. 조선어문학회를 결성해 활동했으며, ‘김태준의 조선소설사’ 등을 집필해 우리나라 문학사를 체계화하기도 했다.

 

국문학자 김태준은 ‘금호신화’ ‘장화홍련전’ ‘춘향전’ ‘홍길동전’ 등을 시기별로 발굴해 비평적으로 체계화했다. 조선 시대 문신이었던 허균이 쓴 서자 출신 서민 영웅을 다룬 ‘홍길동전’은 별도의 작품으로 정리되지 않았는데, 이를 발굴해서 소개했다고 한다. 허균은 능지처참으로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다. 국문학자 김태준은 해방 이후에 경성대학 총장에 선출됐지만 미군정청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사회주의적 민족운동으로 1949년 서울 수색 근처에서 총살당해 생애를 마쳤다. 이 역시 우리나라 근현대사,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뉜 세계사의 남겨진 슬픔의 한 원인으로 보였다. 이를 봉합하고 통합하고 개별성을 인정하며 평화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아직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경제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한 것은 문학적 창의적 상상력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시작으로 질 들뢰즈, 앙리 베르그송, 장폴 샤르트르 등이 예술을 위한 철학적 토대를 마련해왔다. 르네상스 시대 천재 화가인 레오나드로 다빈치도 과학적 관심이 깊었으며, 아이작 뉴턴이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저작도 창의적 사고를 물리학적으로 체계화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도 수필집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예전에 카이스트 박사 출신의 1인 기업 대표가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장점은 최대한 빨리 비슷하게 응용해서 만드는 것이지만, 서양 선진국처럼 창의적인 과학 경제 생태계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에는 아직 미숙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제도 또는 철학과 기술, 문화가 동등하거나 융합적인 가치를 인정받으면 우리나라도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CNB뉴스=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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