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37조원 투자…사업혁신 ‘속도’
유통·식품 통큰 베팅, 기존 상권 재편
신 “꿈꾸는 미래는 혁신에서 비롯된다”
최근 롯데칠성음료 등기이사로 복귀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유통·식품분야 영토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천에 국내 최대 규모 쇼핑몰 건립을 비롯, 2026년까지 8조원 넘는 금액을 유통 부문에 투자한다. 소주 ‘새로’의 열풍에 힘입어 식품사업도 탄력을 받고 있으며, 신성장 테마로 내건 헬스케어·모빌리티·2차전지 등의 윤곽도 차츰 또렷해지고 있다.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고 있는 신 회장의 뒤를 밟아 봤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도전과 열정이 이로운 미래를 만들겠다.”
지난달 21일 서울 송파구 시그니엘 서울에서 열린 ‘롯데 어워즈’에서 신 회장은 개척 정신을 재차 강조했다. 롯데그룹 34개 계열사 수백명의 임직원 앞에서 그의 눈빛은 어느때 보다 빛났으며,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신 회장은 신년사, 사장단 회의 등 기회 있을 때마다 ‘도전’을 주문하고 있다.
실제 신 회장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지난 2011년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른 뒤 12년 간 무려 30여건의 크고 작은 M&A(인수합병)를 성공적으로 성사시켰다. 롯데렌터카가 2015년 KT렌탈을 인수해 업계 최강자로 도약했으며, 같은해 롯데케미칼은 삼성의 화학 계열사를 품어 국내 선두 화학기업의 자리를 굳혔다.
롯데 창립 50주년을 맞은 2017년에는 “과감한 혁신으로 롯데를 바꾸겠다”며 ‘뉴롯데’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2년에 걸쳐 롯데쇼핑 전체 오프라인 매장의 30%를 정리하는 등 대대적인 사업 혁신이 진행됐으며, 한편으론 실력있는 외부 인재를 대거 영입해 반세기 동안 이어오던 ‘순혈주의’ 조직 문화를 깼다.
코로나19가 들이닥친 시기에도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20년 중고나라를 시작으로 두산솔루스·한샘 등의 인수전에 참여해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초에는 한국미니스톱 지분 100%를 인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인수로 2600여개 미니스톱 점포와 12개 물류센터를 품으며 막강한 네트워크를 갖게 됐다.
지난달에는 롯데제과가 1967년 설립 이래 56년 동안 써왔던 사명을 ‘롯데웰푸드’로 변경했다. 롯데제과는 고 신격호 명예회장이 세운 롯데그룹의 모태임에도 과감히 간판을 바꾼 것. 롯데웰푸드는 롯데푸드를 합병해 매출 4조원대 종합식품회사로 재탄생 했다. 이런 숱한 도전과 혁신 과정 속에서 신 회장은 재계에서 ‘승부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신동빈의 꿈…“소비자 일상이 롯데와 결합”
‘승부사’ 신동빈은 이제 ‘유통 강자 롯데’를 넘어, 일상의 시작과 끝이 롯데로 통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롯데는 기존 주력인 유통·식품·화학 외에도 헬스 앤 웰니스(Health&Wellness)·모빌리티(Mobility)·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신성장 테마로 정해 5년간 37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중 유통 분야는 8조1000억원을 투자한다. 상권 활성화 및 고용 유발 효과가 높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인천 송도 등에서 대규모 복합몰 개발을 추진하고, 핵심 지점의 리뉴얼을 차례로 진행한다.
특히 주목받는 지역은 인천이다. 롯데가 과거 유통 분야 앙숙인 신세계와 인천터미널 입점을 놓고 수년간 소송전을 벌인데다, 현재도 양사가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는 곳이기 때문.
인천시와 장기임대계약을 맺고 인천터미널점을 운영해오던 신세계는 2012년 롯데가 인천시로부터 터미널 부지와 건물 일체를 매입하자 소송으로 맞섰다.
이후 재판은 롯데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신세계는 설욕하듯 인천 청라지구에서 스타필드 건립에 나섰고 연이어 스타필드와 연계한 돔 야구장 복합 개발 계획을 내놨다. 돔구장과 쇼핑, 문화, 레저, 엔터를 한번에 즐길 수 있는 체류형 복합 매장을 짓는다는 구상이다.
롯데는 이에 맞서 2027년 완공목표로 인천터미널 재개발과 함께 롯데백화점 인천점을 국내 최대 규모 명품 백화점으로 새로 짓고 있다. 이곳은 인천 상권 최중심부인 미추홀구, 남동구, 연수구의 교차점에 위치한 요충지로 연면적 35만여㎡(약 10만5000평)에 이르며, 영업면적 기준으로는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을 뛰어넘는 수도권 최대 규모다.
여기에다 롯데는 신 회장의 ‘송도 랜드마크’ 특명에 따라 인천 송도에 백화점부터 호텔을 아우르는 ‘도심 속 리조트형 쇼핑몰’을 건립할 예정이다. 롯데백화점 인천점과 양날개를 이뤄 인천 상권을 재편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지금까진 예고편? ‘찐 혁신’ 이제부터
신 회장은 이같은 오프라인 영토 확장 뿐 아니라 신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쇼핑이 공격적으로 ‘그로서리(식료품 잡화점)’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 대표적. 롯데쇼핑은 영국의 리테일테크 기업 오카도와 전략적 동맹을 맺고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그로서리 플랫폼(Grocery Platform)’을 구축 중이다. 2030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자동화물류센터(CFC) 6곳을 건립해 2032년 국내 그로서리 시장에서 5조원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신 회장은 롯데쇼핑을 중심으로 온·오프라인 커머스를 통합해 다양한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해외사업에 있어서는 명품과 면세점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신 회장은 최근 세계 최대 명품 그룹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총괄회장을 직접 만나 롯데백화점 현황을 설명하고 향후 루이비통 입점을 적극 검토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호주 시드니점, 베트남 다낭점을 잇달아 오픈했으며. 올해는 멜버른공항 면세점 운영권을 획득해 글로벌 영토를 넓히고 있다.
한편 식품 분야에서는 롯데칠성음료의 약진이 기대되고 있다. 신 회장이 3년 만에 롯데칠성음료 등기이사로 복귀해 직접 경영 전면에 나선데다, 최근 소주 ‘새로’가 롯데 어워즈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분위기가 고무돼 있다는 점에서다.
‘제로 슈거’인 새로는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지난달 중순 1억병 판매를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롯데는 새로 열풍에 힘입어 날로 확장되고 있는 제로 슈거 시장을 빠르게 선점할 계획이다.
롯데칠성음료는 국내 또는 해외 신규 와이너리 인수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신 회장이 와인 애호가이기도 해 올해 와인 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신 회장은 유통·식품사업 전 분야에서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혁신을 진행 중이다. 이미 12년을 달려온 그가 어디 즈음에서 멈출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승부사의 위기돌파 카드는 ‘적시 경영’
하지만 신 회장의 앞에 장밋빛만 보이는 건 아니다. 글로벌 경제 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이며, 고물가·고금리에 서민들은 주머니를 닫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 갈등 수준을 넘어 신냉전 위기로 치닫고 있는 점도 롯데의 영토 확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해 신 회장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Right Thing)을 적시(Right Time)에 실행하자”는 ‘적시 경영’을 위기 돌파 카드로 제시한 상태다. 재계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어떤 결과를 일궈낼지에 주목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CNB뉴스에 “오프라인 쇼핑을 의미하는 ‘유통’이 지금은 4차산업혁명과 결합하면서 메타버스와 AI(인공지능) 기반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데다, 신동빈 회장의 혁신 의지가 워낙 강해 롯데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롯데의 공격적인 영토 확장이 소비자의 일상을 롯데와 결합시키겠다는 신 회장의 강한 신념에서 비롯된 만큼, 말뿐인 비전이 아니라 실제 여러 분야에서 상당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