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아들을 기리고자 아들의 모교인 부산대학교에 4억 4000만 원에 달하는 아파트 현물을 장학금으로 출연한 70대 어머니의 사연이 연말을 앞두고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부산대학교는 지난달 30일 오후 5시 대학본부 5층 총장실에서 부산대 법학과 90학번 고 손영주(52) 동문의 어머니인 이정심(79) 여사가 아들이 공부했던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의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부산 해운대구에 소재한 4억 4000만 원(실거래가) 상당의 아파트를 기증했다고 1일 밝혔다.
부산대는 어머니 이정심 씨의 뜻에 따라 기증받은 아파트를 매각 또는 임대하는 방법으로 ‘손영주 장학금’을 새로 만들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가계곤란(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 지원하기로 했다.
어머니 이 씨에 따르면, 부산대 법학과 90학번인 고 손영주 동문은 졸업 후 국내 한 카드사에 취업해 10년 넘게 근무하던 중 2017년 건강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신경이 굳어가는 희귀난치성질환인 소뇌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이후 손 동문은 연고가 있는 부산으로 근무지를 옮겼으나 1년 뒤 쓰러져 입원하게 됐고, 가족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계속 투병해 오다 올해 7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3년 7개월간의 긴 투병기간과 4억 원이 넘는 병원비가 유족을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표현하지 못할 크나큰 아픔과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이 떠난 빈자리와 허전함을 장학금 기부로 영원히 채우기로 결심했다.
여기에는 어머니 이정심 씨가 3년 넘는 병원생활 동안 아들과 나눴던 많은 이야기와 아들의 소중한 마음을 세상에 계속 살려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육이 굳어가던 아들은 말하는 것조차 어려움이 있어 종이와 펜으로 가족과 소통해야 했는데, 그렇게 보낸 긴 시간 동안 힘겹게 써내려간 한 글자 한 글자를 보며 어머니는 아들의 생각을 모두 알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날 장학금 전달식을 위해 부산대를 찾은 어머니 이정심 씨는 “우리 아들이 공부를 참 잘했다. 부산대 다니면서도 장학금 받으며 공부했다. 이 아파트는 영주 본인이 남긴 재산이니, 영주가 소중히 생각했던 대학에 드리고 싶었다”며 “영주의 모교 후배들을 위해 꼭 필요한 데 써주신다면 하늘에 있는 우리 아들이 지상에서 고단했던 몸을 조금이나마 더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왔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지팡이로, 휠체어로, 글씨를 쓰던 야윈 손으로 아들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우리 아들은 영면에 들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이 학업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 후배들이 아들 이름의 장학금으로 힘내어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내내 기억할 아들의 오늘이고 내일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고인의 사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인 차정인 부산대 총장은 “아드님을 기리는 가족들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는 정말 소중한 기부금”이라고 유족들을 위로하고 “어렵게 출연해주신 장학금은 저소득층 학생들과 후배들을 지원해 아드님의 귀한 뜻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어지고 기억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