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업들의 3월 정기주주총회가 전자투표제 확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자율지침) 등 주주권 강화로 여느 때보다 활기를 띄고 있다. CNB는 주총 시즌에 맞춰 분야별로 주요 이슈를 연재하고 있다. 이번에는 현대자동차 의권결자문사와 글로벌 헤지펀드 간의 충돌을 다뤘다. (CNB=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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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vs 엘리엇, 주총 ‘진검승부’
글래스·ISS·국민연금 “엘리엇 반대”
“배당 챙겨 먹튀? 속내 알 수 없어”
현대자동차의 오는 22일 주주총회에 금융투자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는 1주당 3000원의 배당을 제안했지만, 글로벌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7배나 많은 2만1967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두 요구 사이에 차이가 커서 향후 결정방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양대 국제의결권자문기구인 글래스루이스와 ISS는 모두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글래스루이스는 대규모 일회성 배당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진입하면서 자동차산업의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이라, 이에 맞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연구개발(R&D)과 인수합병(M&A)이 필요한데, 대규모 배당을 해버리면 투자자금이 그만큼 줄게 된다는 것.
즉, 지나친 배당이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장기적인 판단이 우세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자동차업계는 화석연료 고갈과 환경오염 문제로 인해 수소자동차 개발과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커넥티트카, 자율주행자동차 개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는 이런 미래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오는 2023년까지 총 45조3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상품 경쟁력 강화(30조6000억원)와 미래기술 투자(14조7000억원) 등이다.
최근 현대차의 실적이 저조한 점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현대차는 작년 연결기준 매출 97조2530억원, 영업이익 2조422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매출은 0.9%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은 47% 하락했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부문 성적은 더 나빴다. 작년 현대차의 자동차부문은 매출 75조2650억원, 영업이익 1조590억원을 보였다. 전년보다 매출은 1% 늘었고, 영업이익은 59% 감소했다.
이렇게 실적이 좋지 않았는데, 평년보다 지나치게 높은 배당을 요구하는 것은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ISS도 비슷한 이유로 현대차의 배당 규모에는 찬성, 엘리엇의 요구에는 반대 입장을 내놨다. 현대차가 어려움을 딛고 새로운 미래에 적응하기 위해서 지나친 배당이 오히려 주주와 회사의 이익을 헤친다고 본 것이다.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큰 손’인 국민연금공단도 현대차의 편에 섰다. 국민연금은 현대차의 지분 8.7%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엘리엇의 요구가 과도하다며, 현대차의 안건에 찬성하기로 했다.
현대차 노조도 사측 편을 들고 나섰다. 노조는 엘리엇이 현대차에 지나치게 많은 배당을 요구하며 더 큰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며, 헤지펀드 특유의 ‘먹튀’ 속성으로 비정상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한금융투자 강송철 연구원은 CNB에 “외국계 사모펀드는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면서 일반적인 경우보다 매우 높은 수준의 배당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CNB에 “이미 현대자동차 이사회는 엘리엇의 고배당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선임에 대해서도 현대차와 엘리엇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현대차는 윤치원 UBS그룹 자산관리부문 부회장과 유진오 전 캐피탈그룹 인터내셔널 파트너,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추천했다.
반면 엘리엇은 존 류 베이징사범대 투자위원회 의장, 로버트 맥이완 볼라드파워시스템즈 회장, 캐나다 항공전자장비기업 CAE의 마거릿 빌슨 사외이사를 현대차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글래스루이스와 국민연금 등은 사외이사 부문에서도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현대차에 대한 찬성의견이 우세한 편이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엘리엇은 운용자금만 350억달러(39조7000억원)에 달한다. 행동주의 성향의 펀드다. 국내에서는 삼성과 현대 등의 지배구조 개선과 배당 확대를 요구하면서 유명해졌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도 반대했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1년 재정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의 국채를 헐값에 사들인 뒤 수년뒤 막대한 이윤을 챙긴 일로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를 맞았고 엘리엇은 ‘벌처(vulture·동물 사체를 먹는 독수리) 펀드’라는 악명을 얻었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