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연극배우 김운하의 사망 소식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23일 영화배우 판영진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져 문화계가 비통함에 잠겼다.
이들 모두 극심한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한 지 4~5일 가량 지난 다음에야 발견된 김운하는 혼자 고시원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 극단 신세계의 연극 ‘인간동물원초’ 등에 출연했지만 최근 월급은 50만원 안팎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08년 독립영화 ‘나비두더지’ 이후 작품 활동이 끊긴 판영진은 지난달 SNS에 ‘20년을 버티어 온 일산 이 집 이젠 내주고 어디로’라는 글을 올리며 어려운 상황을 암시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지인에게 ‘힘들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화려하게만 보였던 연예계, 특히 무명 예술인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준 이 안타까운 사건을 계기로 연예계 수입 양극화 현상과 예술인복지법에 대한 관심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12년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문화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수입 100만원 이하가 66.5%, 50만원 이하가 25%로 높게 나타났고, 수입이 없다는 응답도 26.2%에 달했다.
이는 2013년 8월 국세청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안민석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년간 운동선수, 연예인 수입 신고 현황’에서 배우, 가수, 모델 등의 2012년 평균 소득이 3473만원, 이 중 배우의 연평균 소득이 4134만원으로 나온 것과 비교되는 결과다.
도움이 필요한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예술인복지법, 일명 ‘최고은법’이 2011년 이미 제정, 2012년부터 시행됐지만 정작 3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 효용이 없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배우들 사이에 예술인복지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안다 하더라도 어려운 기준을 맞추기 힘들다는 지적이 눈에 띈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선 예술 활동 종사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연극은 최근 3년 동안 3편 이상의 연극에 출연 △문학은 최근 5년 동안 5편 이상의 작품을 문예지에 발표 △영화는 최근 3년 동안 영화상영관 등에서 상영되거나 상영등급분류를 받은 3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 등이 조건이다. 이 외에도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들이 까다롭다. 인기 스타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수월하지만 정작 도움이 절실한, 오디션 및 캐스팅 기회 한 번 갖기 힘든 무명 배우에게는 달성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도움이 필요한 예술인을 외면한 채 탁상공론을 펼치는 법의 현실과 더불어 스타 캐스팅에 집중하는 공연계 풍토도 지적받고 있다. 공연의 내용보다 좋아하는 스타의 출연 여부에만 관심을 쏟고, 극단 측에서도 흥행을 위한 캐스팅에만 힘을 쏟는 경우다. 작품 흥행을 위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주객이 심하게 전도돼 재능있는 다른 배우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 및 도전조차 주어지지 안타까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법이 실효성을 갖추더라도 공연계의 풍토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배우 이광기는 한 방송에서 김운하, 판영진을 애도하며 “무명배우들은 생활이 정말 어렵지만 그래도 무대에 서는 게 정말 좋기 때문에 연기를 하는 거다.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행복하기 때문에 하는 거다”라며 “열악한 환경들이 결국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어려움 속에 있는 예술가들을 위해 이번 기회에 하나의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한 쪽만의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예술인을 위한 복지법이 보완 및 개선을 거쳐 제대로 시행되고 대중 또한 그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에 많은 관심을 갖는 노력이 앞으로 더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