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의 작가 코사와 료타의 최신작 '취미의 방'이 한국을 찾았다.
성인 남자들 네 명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취미 생활을 즐기기 위해 마련한 비밀의 공간 '취미의 방'에 갑자기 실종사건을 수사한다고 경찰이 들이닥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취미의 방 등장인물 모두가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고 평화로울줄만 알았던 취미의 방은 아수라장이 된다.
특이 재료를 이용한 요리가 취미인 내과 의사 아마노, 건담 프라모델 만들기가 취미인 정신과 의사 카네다, 고서를 수집하는 자동차 세일즈맨 미즈사와, 취미 찾기가 취미인 화장품 회사 직원 도이는 겉으로 봐선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 같다.
그런데 알고보니 4명의 남자 모두가 2년 전, 한 여인의 살인 사건과 연관돼 있었고, 이들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겉으로는 친한 척 환하게 웃던 이들이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요목조목 따지거나 분개하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이런 구도가 '키사라기 미키짱'과 많이 비교되고 있다. 이 작품은 최고의 아이돌 가수 키사라기 미키짱의 1주기 추모식에 모인 오타쿠 삼촌팬들이 그녀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쉴 새 없이 제기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는다. 키사라기 미키짱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이들은 진짜 범인이 있을 것이라 추리하며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과정이 '취미의 방'과 닮았다.
하지만 김관 연출은 이런 비교에 대해 선을 그었다. 김 연출은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을 본 적이 없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이 극을 준비하던 중 영화 버전을 봤다. 비슷한 구도이긴 하지만 '취미의 방'이 더 세련되게 표현됐다고 말하고 싶다"며 "처음엔 가볍게 극이 이어지다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무게감이 쌓이게 연출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작자 코사와 료타가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취미라는 것은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또다른 모습을 감추거나 변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 극에선 취미를 통해 자신이 지닌 또다른 모습, 즉 이중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개막 초반이라 그런건지 아직 연출 의도가 완벽하게 극에 녹아들지는 못한 것 같다. 20일 대학로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열린 프레스콜 현장에서 '키사라기 미키짱'을 봤다는 한 관계자는 '취미의 방'에 아쉬움을 표했다. 비슷한 구도를 지니고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키사라기 미키짱'만큼 유연하지 못하고, 너무 과장되게 표현된 캐릭터들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렇지만 반대로 '키사라기 미키짱'을 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이 극의 구조가 신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아마노 역의 배우 서범석과 김진수는 선량한 모습에서 극적으로 변화하는 모습까지 생동감 있게 연기해 눈길을 끈다. 카네다 역의 배우 최진석과 남문철도 겉으로는 멀쩡한 정신과 의사이지만 자신의 건담 프라모델에 손을 대면 버럭 화를 내거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능청스레 연기해 웃음을 자아낸다.
'키사라기 미키짱'이 국내 관객의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비교는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이 와중 '취미의 방'이 차별화된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연극 '취미의 방'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다음해 1월 18일까지 공연된다. 김관이 연출을 맡았고, 배우 최진석, 서범석, 남문철, 김진수, 김늘메, 최대철, 박민정, 지일주, 안재영, 백은혜가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