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정동 세실극장에서는 연극 '여보 나도 할 말 있어' 프레스콜이 열렸다. '여보 나도 할 말 있어'는 찜질방을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는 연극이다.
집에서 홀로 강아지를 돌보는 60대 가장 '영호',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자리가 위태로운 40대 샐러리맨 '종수', 자식농사 잘 짓고 노후 걱정 없이 사는 '말복', '늦은 나이에 손자를 봐야 하는 갱년기 여성 '영자', 세월이 가도 사랑받고 사는 예쁜 '춘자', 사춘기 자녀와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 '오목' 등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날 프레스콜에서는 총 4개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시연됐다. '화성인 금성인'에서는 배우 유형관과 이종민이 등장해 서로 소통이 안 되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해의 관점이 다른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돋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이어진 '자식 그 한없는 내리사랑'에서는 배우 장영주, 김선화, 박현정, 권혜영이 등장해 현 시대의 부모와 자식 모습을 보여줬다. 자식에게는 모든 것을 쏟아도 아깝지 않지만 막상 자신의 부모에겐 소홀하고, 또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하는 모습이 시연됐는데, 그리운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무대를 지켜보던 김영순 연출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에는 배우 전성애, 김정하, 박현정, 권혜영이 무대에 등장해 '가깝고도 먼 당신'이라는 장면이 시연됐다. 이 장면에서는 배우자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뤘다. SNS 등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배우자와 소통을 잘 하지 못하고 거리가 멀어지는 현실을 꼬집었다.
마지막으로는 배우 송민형과 이종민이 이 시대의 아버지와 남편의 모습을 그렸다. 특히 나이가 들어 "아내가 유혹하는 밤이 무섭다"고 토로하는 이들의 모습은 연민을 주면서도 유쾌하게 표현돼 웃음을 자아냈다. 모든 하이라이트 장면에 화려한 무대 장치와 소품도 없었지만, 공감을 주는 이야기가 가슴에 크게 와닿으며 무대를 꽉 채웠다.
하이라이트 장면 시연이 끝난 뒤 김영순 연출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 극단 '나는 세상' 대표이기도 한 그는 이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까지 맡았다. 김 연출은 "2년 전 이 작품을 쓰기 위해 3개월 동안 찜질방에서 직접 먹고 잤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찜질방에서 다양한 어머니와 아버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시어머니와 싸우고 힘들어 하거나, 자식이 말을 안 들어 속을 썩는 어머니도 있었고, 집에서 설 자리를 잃어 외로워하는 아버지도 있었다.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극을 썼다. 결혼을 했든, 안했든 누구나 어떤 장면에서 자신의 이야기라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이 공연을 처음 무대에 올리고 관객들에게 선보였는데, 김 연출이 말한 것처럼 공감이 된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고. 김 연출은 "이 작품을 보고 가족과 싸웠다가 화해했다는 경우도 있었고, 장모님과 사이가 소원했는데 이 공연을 보여드리고 나서 사이가 더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문화 예술의 힘이 소통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뿌듯했다"고 감회를 밝혔다.
초연에 이어 그 감동을 이번 재연에서도 관객들에게 전하려 한다. 김 연출은 "바쁘게 살아가면서 정작 가까워야 할 가족과 같이 보낼 시간도 부족하고 멀어지는 시대다. 이 공연이 가족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고 공감을 줄 수 있도록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편, 연극 '여보 나도 할 말 있어'는 다음달 31일까지 정동 세실극장에서 열린다. 김영순이 극작과 연출을 맡았고, 배우 장영주, 김정하, 송민형, 전성애, 김선화, 유형관, 김성기, 진수현, 이수미, 박현정, 이훈, 이종민, 권혜영 등이 출연한다. 극단 '나는 세상'이 제작을 맡았고, '아츠컴퍼니'가 기획했다. 공연 관련 문의는 02-766-9003으로 하면 된다.